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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얘기] [PIFF 2005] 위풍당당 베스트 10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가이드 |
| 글쓴이 : 하늘아이
글쓴날 : 05-10-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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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에 풍성을 거듭하던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 두 자리 숫자 시대를 맞아 더욱 풍성해졌다. 총 73개국 307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1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검증받은 걸작, 거장의 신작, 베일 속의 화제작, 보고 나면 '올해의 발견'이 수두룩하다. 허나 애석하게도 그중에서 골라야 하고, 치열한 티켓 전쟁을 치러야 한다. 소풍은 장볼 때부터, 영화제는 예매할 때부터. FILM2.0이 도와드린다. FILM2.0이 고르고 고른 위풍도 당당한 베스트 10. 든든한 부산국제영화제 준비물을 잊지 마시라
'허우' 미학의 총화
허우 샤오시엔 <쓰리 타임즈>
Three Times | 개막작ㅣ대만ㅣ2005ㅣ135분ㅣ35mmㅣ감독 허우 샤오시엔ㅣ출연 장진, 서기ㅣ10.6 야외 19:30, 10.9 부산1관 20:00, 10.12 메가5관 14:00
 사랑과 자유, 청춘을 테마로 한 세 개의 이야기를 묶은 <쓰리 타임즈>는 자신의 영화 이력에 대한 허우 샤오시엔의 성찰적 되돌아보기다. <펑쿠이에서 온 소년>,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의 모티프를 시간 순서대로 가져온 이 영화를 통해 허우 샤오시엔은 자신의 영화가 어떤 경로를 통해 진화해 왔는가를 압축적으로 요약한다. 1편 '연애몽'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짙은 향수를 당구장 여종업원과 군인 청년의 애틋한 로맨스에 담는다. 'Smoke Gets In Your Eyes'와 'Rain and Tears' 등 올드 팝의 선율이 구성지게 퍼지면서 당구장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미니멀한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자막이 들어간 무성영화 형식으로 찍은 2편 '자유몽'은 <해상화>의 그 기념비적인 롱테이크를 재확인할 수 있다. 3편 '청춘몽'에서는 현대 타이페이 사회를 배경으로 부유하는 청춘의 삶을 감각적인 스타일로 묘사한다. 1966년 카오슝('연애몽'), 1911년 다다오쳉('자유몽'), 2005년 타이페이('청춘몽')를 배경으로 하는 세 편의 영화는 사랑과 관계를 다루는 방식에서 다소 간의 차이를 보인다. 인간 사이의 소통의 매개가 편지에서 서찰로, 이메일l 또는 휴대전화 메시지로 변화하는 양상은 인간 사이의 관계맺음의 변화를 보여 준다. 서기와 장진 두 배우가 세 편 모두에서 주연을 맡았고, 특히 <밀레니엄 맘보> 이후 허우 샤오시엔의 총애를 받게 된 서기의 다양한 이미지는 경탄할 만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형식미의 변화다. 허우 샤오시엔은 각각의 모티프를 취한 작품들에서 사용한 스타일을 답습하며 스스로의 영화 이력을 총화한다. 허우 샤오시엔 영화의 역사적 변화를 서머리할 요량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으로 올해 부산에서 상영되는 버전은 칸영화제 상영 후 재편집을 거친 최종본이다. 장병원 기자
소외된 사랑의 원정기
황병국 <나의 결혼원정기>
폐막작ㅣ한국ㅣ2005ㅣ117분ㅣ35mmㅣ감독 황병국ㅣ출연 정재영, 유준상, 수애ㅣ10.14 야외19:30
 여기 무슨 로맨스가 있을까 싶다. 이 땅에서 짝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먼 나라까지 날아간 농촌 총각들과 제 나라를 벗어나고픈 처녀들이 만나는 동상이몽의 결혼. 이들의 2세를 가리키는 ‘코시안’이라는 말이 정착할 정도로 현실이 됐지만 ‘결혼 원정’은 여전히 낭만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끓는 가슴이 없을까. “쌀 수입하는 것도 원통한데 여자까지 수입하게 된” 원통한 현실에 반성이 없을까. 시사 프로그램의 소재로만 취급됐던 결혼 원정대의 이야기가 여기, 스크린에 절절히 담겼다. 베트남 처녀, 필리핀 처녀, 조선족 처녀도 모자라 더 멀리 우즈베키스탄까지 날아간 딱한 남자들. 어디에 붙었는지 뭘 먹고사는지도 알 수 없는 낯선 땅에, 오직 결혼을 이루기 위해 7시간을 날아간 그들 사이에 순박한 만택(정재영)이 있고 유들유들한 희철(유준상)이 있다. 그러나 쑥맥이든 선수든 제대로 사랑해 보지 못한 이들이 사랑에 익숙치 않은 것은 당연지사. 거듭되는 맞선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일은 성사되지 않는다. 통역을 맡은 현지교포 라라(수애)는 애가 닳아 급기야는 가장 어리숙한 만택의 개인 교습에 나선다. 이국의 풍광을 배경으로 수줍은 사랑이 이렇게 시작된다. 그 자신 결혼 원정대와 동행하여 생생한 현장을 경험했던 바 있는 황병국 감독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주변인들의 이야기에 사랑과 결혼에 관한 성찰을 얹었다. 애써 외면했던 불편한 소재에 유머가 섞이면서 <나의 결혼원정기>는 매끄러운 희비극으로 완성됐다. 촌스러운 서른여덟 노총각으로 탈바꿈한 정재영과 유준상의 천연스런 연기와 청초한 수애의 매력이 결합된, 찡한 코미디이자 웃음 터지는 애환의 드라마. 김영 기자
교태 만발, 웃음꽃 활짝!
스즈키 세이준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Princess Raccoon | 아시아 영화의 창ㅣ일본ㅣ2005ㅣ111분ㅣ35mmㅣ감독 스즈키 세이준ㅣ출연 장즈이, 오다기리 조ㅣ10.11 대영1관 17:00, 10.13 메가5관 17:00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스즈키 세이준의 전작에 익숙한 사람까지도 충분히 당황시킬 만한 영화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라면 당연히 화면을 핏빛으로 물들일 총싸움의 향연을 기대할 관객에게는 놀랍게도 이건 툭 까놓고 총천연색 ‘동화’다. 자아도취에 빠진 아즈치 군주는 자기보다 훨씬 잘생긴 아들 아메치요를 질투한다. 영문도 모르고 추방당한 아메치요는 숲속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마주치고, 곧장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사실 유서 깊은 다누키 가문, 너구리 일족의 공주였다. 너구리와 인간의 사랑이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의 시기와 질시, 죽음의 위협까지도 순수한 사랑의 힘으로 이겨낸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얼굴에 다 드러나 버리니까”라며 행복해하는 아메치요와 다누키 커플을 둘러싸고 왈츠와 랩, 탭 댄스, 아리아, 로큰롤, 블루스, 그리고 1989년 사망했으나 CG로 새롭게 부활한 일본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까지, 숨 돌릴 틈 한번 주지 않는 춤과 노래의 향연이 흥건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일본의 전통 예술인 가부키와 노, 셰익스피어와 오스카 와일드의 정서, 16세기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만한 나체의 그림들까지 뒤섞인다.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스즈키 세이준 특유의 무질서하지만 참을 수 없이 폭발적인 활력과 에너지, 짜릿한 흥분을 이끌어내는 뻔뻔한 판타지의 세계다. 그 황홀경이 지나쳐 요사스런 교태의 난장으로, 혹은 풋풋한 청춘 시절로 돌아가 버린 노인의 막무가내 유머로 오해받더라도 할 수 없다. 그저 노환에 고생하는 80대의 스즈키 세이준이 틈틈이 산소 마스크를 착용하면서까지 20년 동안 염원하던 ‘너구리’ 프로젝트를 이토록 아찔한 발랄함으로 완성시켰다는 데 머리를 조아리는 게 우선이다. 김용언 기자
어느 낙태 시술자의 초상
마이크 리 <베라 드레이크>
Vera Drake | 영국특별전 |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 2004 | 125분 | 35mm | 감독 마이크 리 | 출연 이멜다 스텐턴, 필 데이비스, 리처드 그래험 | 10.7 대영3관 11:00, 10.13 메가4관 20:30
 아들 하나 딸 하나, 성실한 남편과 함께 사는 베라 드레이크의 삶은 평화롭다. 아침부터 몸이 불편한 이웃을 돌보러 다니며 가정부로 일하는 그의 일상은 분주하고 활기차 보인다. 하지만 그 수많은 봉사 활동들 중에는 뭔가 마뜩찮은 일이 하나 끼어 있다. 금요일 다섯 시, 젊은 여성들의 집에 찾아가 긴장하는 여성들을 달래며 물을 끓이고 기묘한 기구를 꺼내는 베라. 그에게는 이러한 행위 또한 도움이 필요한 젊은 여성들을 위한 고귀한 봉사 활동의 일부다. 2004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여우주연상(이멜다 스텐턴)을 수상한 마이크 리의 <베라 드레이크>는 50년대 런던에서 불법으로 낙태 시술을 행했던 한 노동자 계급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나리오 없이 촬영 대본만을 가지고 완성한 <베라 드레이크>는 극적인 구성을 택하지 않고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듯 2차 대전 직후 50년대 런던 노동자 계급의 소소한 일과를 차분히 관찰한다. 심지어 관객이 영화가 중반에 이르기까지 베라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 이멜다 스텐턴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 역시, 극중 인물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이 영화가 낙태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쥐꼬리만한 제작비로 영화를 찍어야 했던 마이크 리는 심지어 노래 저작권료를 물지 않기 위해 배우들로 하여금 당시 유행가와 비슷한 멜로디를 콧노래로 흥얼거리게 했을 만큼 빠듯한 조건과 분투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비시 정부 치하 프랑스 노동 계급 여성의 낙태 시술 이야기를 다룬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여자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작품이다. 장병원 기자
공허한 욕망이 흔들리다
차이밍량 <흔들리는 구름>
The Wayward Cloud | 아시아 영화의 창 l 대만, 중국, 프랑스 l 2005 l 114분 l 35mm l 감독 차이밍량ㅣ출연 이강생, 첸샹치ㅣ10.7 부산1관 13:00 , 10.9 메가6관 7관 19:00, 10.12 메가6관 7관 17:30
 첫 장면부터 질펀하게 이루어지는 섹스. 주인공 시아오강(이강생)은 포르노 배우다. 뒤로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섹스 장면 때문에 올해 베를린영화제 상영 당시 극단의 평가를 받은 영화다. 이 같은 평가는 차이밍량에게는 예상하고 기대하던 바다. 포르노 테이프가 수도 없이 양산되고 보급되는 사회에서 극장에 걸리는 영화만 엄격한 검열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대 사회의 음흉한 이중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차이밍량은 이러한 욕망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차이밍량의 전작 <구멍>에는 이름 모를 바이러스로 세상이 종말을 고하려는 시점에 구원의 빛처럼 뮤지컬 장면이 나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흔들리는 구름>에도 뮤지컬 장면이 사용된다. 차이라면, 훨씬 더 화려하고 규모가 커졌다는 정도. 차이밍량에게 세상은 생명의 물이 고갈된 곳이다. 하지만 현재에 비해 과거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키치적 상상으로 가득찬 뮤지컬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 특히 시아오강이 물탱크에서 물고기로 변신하거나 여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유쾌하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로 가득찬 뮤지컬 신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포르노를 응시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묵직해지는 순간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흔들리는 구름>은 불편한 순간조차 시선을 돌릴 수 없는 매혹과 전율의 영화다. 포르노 영화 속 장면이 영화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시아오강이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는 여자와 포르노를 찍는 순간 그가 좋아하는 여자 시앙차이가 이 광경을 지켜보는 장면에선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의 관음증적 시선과 겹쳐지는 이 시선, 그리고 사지가 후들거릴 만큼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도 압권이다. 베를린영화제 예술공헌상, 알프레드 바우어상 수상작. 박혜영 기자
다시 시작된 소름 끼치는 관찰
다르덴 형제 <더 차일드>
The Child | 월드 시네마 | 벨기에, 프랑스 | 2005 | 100분 | 35mm |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ㅣ출연 제레미 르니에르, 데보라 프랑수아ㅣ10.07 대영1관 14:00, 10.10 대영3관 20:00
 형제는 대단했다. 58년 칸영화제 역사상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1999년<로제타>에 이어 올해 <더 차일드>로 영예를 안은 형 장 피에르 다르덴과 동생 뤽 다르덴은 벨기에 출신의 형제 감독. 극영화를 연출하기 전 60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 형제의 영화는 ‘관찰의 힘’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아들>에서 관찰의 방법으로 사용됐던 클로즈업이 <더 차일드>에선 핸드헬드로 바뀌었지만, 최대한 무색 무취하려는 제목 짓기는 여전하다. 제목이 주는 선입견 없이 다르덴의 영화에 들어오면 꼼짝없이 관찰의 포로가 된다. <더 차일드>도 예민한 관찰 덕분에 태어난 영화다. 다르덴 형제는 <아들>을 찍던 중 어떤 여자가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게 됐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약간 불안했다. 형제의 눈에는 여자가 아이를 버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거기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버지가 갓난아이를 내다버린다는 <더 차일드>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애가 애를 낳았다. 절도로 근근이 살아가는 10대 후반의 브루노가 아빠가 됐다. 미니스커트에 꽁지 머리를 하고 다니는 여자 친구 소냐는 기뻐하지만 브루노는 버거울 뿐이다. 어느 날 브루노는 돈에 눈이 어두워 아이를 팔아버리고, 소냐는 충격에 빠진다. 출산율이 낮은 유럽에선 영아 매매가 큰 사회 문제다. 빈곤과 인권의 함수에서 윤리적인 좌표를 찾지 못하는 어린 부모를 통해 다르덴 형제는 인간답게 사는 법을 묻는다.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그 충격을 느낄 수 없는 다르덴 영화. 유일하게 국내 개봉한 <아들>이 전국 2,5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수모를 겪었다. 때문에 부산에서 놓치면 <더 차일드>를 언제 보게 될지 모른다. 한승희 기자
이미지,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미카엘 하네케 <히든>
Cach | 월드 시네마ㅣ프랑스, 독일, 이탈리아ㅣ2005ㅣ99분ㅣ35mmㅣ감독 미카엘 하네케ㅣ출연 다니엘 오테이유, 줄리엣 비노시 | 10.07 부산1관 10:00, 10.09 대영1관 20:00
 유럽 작가주의 영화의 수호자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은 올해 칸영화제 최고의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히던 <히든>이 감독상만을 가져가자 불만을 표시한 이들이 꽤 많았다. 심지어 하네케 자신조차 그랬다. 그 이유를 오프닝부터 상당 부분 수긍할 수 있다는 점에서 <히든>은 더더욱 충격적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평온한 어느 주택가가 보인다. 화면 위로 오프닝 크레딧이 깔리고 나서도 카메라는 한참 고정돼 있다. 문득 말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없는데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싶은 순간 갑자기 화면이 뒤로 감긴다. 첫 장면부터가 영화의 주인공 부부가 보고 있던 비디오테이프 속 화면이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된다. 하네케가 전시하는 이미지와 관객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된다. TV 문학 프로그램의 사회자인 조르주(다니엘 오테이유)와 아내(줄리엣 비노시)는 어느 날 갑자기 그들 가족의 일상이 촬영된 비디오테이프를 받는다. 누가, 언제,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은 채 익명의 테이프는 계속 도착한다. 공포에 사로잡힌 조르주는 문득 어린 시절 한 집에 살던 알제리인 입양아 소년 마지드를 의심하고 그를 찾아가는데 그 장면조차 다시 녹화돼 집으로 배달된다. 미칠 노릇이다. 급기야 조르주의 어린 아들이 실종되면서 사태는 경악스런 장면으로 치닫는다. <퍼니 게임> <피아니스트>가 증명하듯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는 늘 예리한 심리전으로 관객을 쥐고 흔든다. '알 수 없는 시점'이 지닌 모호함 자체가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히든>은 역시나 하네케 영화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마도 매 순간 이것이 실제 화면인지 녹화된 화면인지 의심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호한 시선의 지배 속에 조르주의 비밀이 폭로되고 이는 인간에 대한 비윤리적 태도를 고발하는 감독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칸영화제 기자 회견에서 "영화는 1초에 24개의 거짓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던 하네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보여지는 것만이 진실이 아님을 이보다 더 끔찍하게 말할 수 있을까. 김혜선 기자
11명의 빛나는 수다
미란다 줄라이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 크리틱스 초이스 | 미국 | 2005 | 85분 | 35mm | 감독 미란다 줄라이ㅣ출연 존 혹스, 미란다 줄라이ㅣ10.07 메가9관 14:00, 10.09 대영2관 11:00, 10.12 부산2관 19:00
 신인 감독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프로덕션. 신인감독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 미국 독립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올해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데뷔작이다. 비디오 설치 작업과 에세이 작가 등으로 활동 중인 미란다 줄라이는 웨인 왕의 <세상의 중심>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바 있지만 영화 경력이 탄탄하진 않다. 하지만 탄탄한 시나리오를 쓰고, 몸소 배우로 나섰으며, 자신이 사는 LA에서 저예산으로 촬영한 데뷔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으로 <저수지의 개들>의 쿠엔틴 타란티노, <맥멀런가의 형제들>의 에드워드 번즈에 필적하는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각본 뛰어나고, 연출 좋고, 연기까지 되는 이 새로운 신데델라는 선배 신데렐라들처럼 선댄스영화제를 통해 발굴됐다. 2005년 1월 선댄스에서 독창적인 시선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후, 5월 칸영화제서 최고의 데뷔작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과 젊은 비평가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공식적인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 하지만 여러 명의 캐릭터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끌고 가다 막판에 여차 여차 연결되는데, 영화의 무대가 소도시이고 스타일보다는 캐릭터와 대사발에 의존하는 '동네 수다 영화'라 보면 정확하다. 친절한 구두 판매원과 두 아들, 그 판매원을 짝사랑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등 11명의 주인공들은 타인에게 말 걸기가 쉽지 않다. 모두 자신만의 유리벽 뒤에 숨다가 조금씩 용기를 내보지만 일이 잘 풀리진 않는다. 이런 영화는 이야기와 인물을 억지로 연결시키면서 강한 충격을 주려 애쓰는 데 반해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솔직한 유머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는다. 보는 내내 흥미롭고 딱 세 번 감탄하는 ‘올해의 발견’이다. 한승희 기자
지독하고 특별한 상열지사
나루세 미키오 <부운>
The Floating Cloud | PIFF가 추천하는 아시아 걸작선ㅣ일본ㅣ1955ㅣ124분ㅣ35mmㅣ감독 나루세 미키오ㅣ출연 다카미네 히데코, 모리 마사유키ㅣ10.09 프리머스6관 20:00
 일본 고전 영화를 이야기할 때 당장 떠오르는 이름은 '다다미방에 단정하게 앉은' 샷의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그의 히로인 하라 세츠코일 것이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거리를 서성거리는’ 샷의 나루세 미키오와 그의 히로인 다카미네 히데코가 있다. 아직까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아는 이름들을 경유해 더듬어야 할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왕가위는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을 아시아 최고의 걸작으로 꼽았고(심지어 <화양연화>에서 밤거리를 배회하는 양조위와 장만옥 커플은 <부운>의 불운한 연인들의 끝없는 산책을 연상시킨다), <부운>이 개봉했을 당시 라이벌이었던 오즈 야스지로조차 “지금까지의 일본영화 중 최고 걸작”이라고 격찬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유키코는 필리핀에서 함께 근무했던 연인 도미오카를 찾아온다. 유부남인 도미오카는 애절하게 매달리는 유키코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그들은 끝없이 걷고 목욕하고 술 마시고 공허한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는 여자를 ‘어느 정도’ 사랑한다. 여자는 자존심을 다친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포기할 수 없다. 그건 어떤 숭고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다.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절박감, 실존 자체에 대한 위기의식, 마지막까지 결코 버릴 수 없는 자존심의 거래다. 순정의 외피를 둘러싼 헛된 소망의 좌절, 스스로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는 극도의 불안은 사람을 흔들리게 하며 사랑을 흔들리게 한다. 나루세 미키오는 더할 나위 없는 연민과 공감을 담아 남녀상열지사를 그려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랑을 변하게 하는 현실에 대한 지독할 만큼 냉철한 인식이 깃들어 있다. 이런 식의 멜로 드라마를 본다는 건 결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김용언 기자
모더니스트 이만희의 진면목
이만희 <귀로>
A Road to Return | 한국영화 회고전 | 한국 | 1967 | 90mm | 감독 이만희 | 출연 김진규, 문정숙 | 10.08 프리머스8관 19:45, 10.13 프리머스8관 19:45
 <귀로>는 <만추>와 더불어 곧잘 고 이만희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영화다. 한국영화 연구자들에게 <귀로>는 모더니스트 이만희의 진면목을 확인케 해주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전쟁 액션물과 범죄 스릴러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그가 작품 연출의 전환점을 모색한 흔적이 나타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 소설가 남편을 대신해 그가 쓴 원고를 대신 들고 매주 한 번씩 그가 소설을 연재하는 서울의 어느 신문사에 찾아오는 여주인공의 일상을 주로 그린 <귀로>는 근대화의 시기에 이탈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서정적인 호흡으로 따라간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최동우는 한국전쟁 참전 당시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채 14년 동안 아내 이지연의 보살핌을 받고 산다. 그에게 14년간의 세월은 끝없이 과거를 회고하면서 산 시간이다. 그러나 아내 이자연에게 그 세월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으나 나아갈 수 없었던 시간이다.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남편을 뒤로하고 매주 한 번씩 그의 심부름으로 서울에 오는 아내 이자연의 얼굴을 빈번히 클로즈업하면서 <귀로>는 60년대 서울의 풍경과 거기에 얹히지 못하는 인간의 초상을 유려하게 대비시킨다. 이 영화에서 이만희는 특유의 날카로운 편집과 화면 구성 감각을 보여 주는 것은 물론이고 종래의 영화에선 잘 볼 수 없었던 일종의 광장 공포증을 탁월하게 시각화한다. 특히 영화 중반 이후 이자연이 젊은 신문사 기자와 조금씩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계기로 이 영화에서의 공간은 현기증 나는 화면 구성으로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낯선 감옥 같은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김영진 편집위원
편집부 기사제공 : [필름 2.0 2005-09-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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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2005] 한국에서 단편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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