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강유정이 본 <한반도>
[2006.07.18 / 강유정(영화평론가)]

<한반도>는 강한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지만 그 방식은 자위적인 환상으로 관객을 위로하는 쪽에 쏠려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전 세계적인 영화경향과 흐름을 같이 한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세계의 집단적 열풍 속에 자리한 <한반도>의 영화적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본다.


<한반도>의 기자시사회가 있었던 6월 26일, 배우 안성기는 이런 말을 했다. “월드컵의 열기를 <한반도>가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월드컵에 대한 안성기의 농담은 영화 <한반도> 의 성격에 대한 고백으로 받아들여진다. ‘꼭짓점 댄스’와 ‘대한민국’ 연호 사이에 놓인 월드컵은 실상 대한민국 역사상 드문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결과물이었다. 내부의 적과 그들과의 문제에 몰두해왔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축구의 열기는 ‘우리’의 적이라는 생애 처음의 희유한 경험을 선사했다. 2002년 4강 신화 달성 속에서 축구는 민족의 단일성을 확인할 매개로 부상했고 태극기와 애국가는 바야흐로 ‘우리’의 상징으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흡사 전쟁을 닮은 축구의 속성을 반영하듯, 축구 선수에게는 전사라는 칭호가 내려졌고, 축구 경기에는 ‘전(戰)’이라는 고딕체가 공공연히 따라다녔다.

이는 비단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타국과 맞섰던 WBC,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도 재연됐다. 한국의 근, 현대사에서 삭제할래야 삭제할 수 없는 두 국가, 일본과 미국을 대상으로 펼쳐졌다는 점만으로도 WBC는 월드컵의 열기를 능가했고 민족주의의 열기는 높아져만 갔다. 서재응이 일본에 ?? 꽂았을 때, 야구를 보지 않는 자는 애국주의의 잠복적 배신자로 백안시되었고 한국 축구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내세울 땐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이기적 기회주의자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애정, 기쁨을 배가하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밑바탕에는 타자를 누르고 승전보를 울렸다는 공격적 국가 이기주의가 배태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불행히도 분명히 그러하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할 때 안성기의 농담은 심상치 않은 무의식적 고백일 수밖에 없다. 월드컵의 열기를 잇겠다는 영화 <한반도>의 선언은 영화가 지니고 있는 전략적 입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시사쟁점으로 떠오르자 <한반도> 역시 동반상승을 경험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민감한 관계, 게다가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의 과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포부는 이러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예측이 현실로 판명된 것이다.

상업적 민족주의는 가능한가?

<한반도>는 이제 언론에 공개되었고, 이미 수많은 평단과 언론의 지면을 통해 지나친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와 마주치고 있다. 어떤 기사는 민족주의와 극우주의가 상업주의와 결탁했음을 지적하고, 어떤 기사는 현 정권을 염두에 둔 건 아닐 진대도 현 정권에 우호적인 느낌을 준다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영화 <한반도>는 개봉 이전부터 민족과 극우라는 레테르에 휩싸여 수많은 추측과 우려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과연 민족주의와 극우주의 그리고 국가주의는 같은 의미일까? 그렇다면 <한반도>가 주창하고 강조하고 확인하고 있는 ‘주의’가 민족주의일까 애국주의일까? 민족적 상업주의 혹은 상업적 민족주의라는 수사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한편, 편향된 이기적 국가주의의 유령은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특수 문제일까? 강우석 감독의 대형 프로젝트 작품인 <한반도>에 대한 논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가늠하면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한반도>는 세계적 무의식의 지류를 따라 흐르는 21세기형 이기적 민족주의의 샘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기적 국가주의의 문제가 비단 우리만의 ‘내부적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반도>가 내세우는 것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연호 아래 체계화된 국가 이데올로기의 정합성이다. <한반도>에서 주축을 이루는 갈등은 다른 언어와 습속을 지닌 타민족 간의 문화적 충돌이나 배격이 아니다. 이는 영화 속에서 일본 외상들이 모두 한국어를 능숙히 구사하는 자들로 묘사된 것과 상통한다. 같은 말과 같은 외모, 같은 복색을 차려입은 일본과 대한민국의 정부 인사들은 그들의 옷깃에 꽂힌 국가 엠블럼을 확인하기 이전에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한국영화의 상투성으로 자리 잡은 날렵한 외모에 ‘므니다’를 반복하는 구태의연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구성하는 ‘국가’의 체계다. <한반도>의 주요 이야기가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국새 찾기라는 점도 이와 상통한다. 영화 <한반도>에서 되찾고자 하는 바는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자율권이다. 경의선 철도 너머에 살고 있는 한 민족 북한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대통령이 일본과 싸우는 것은 경계선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한 민족과의 통일이나 만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단일 정부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 일본이라는 타 국가 체계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피나는 전쟁은 민족의 단일성을 침해받지 않고자 하는 노력이 아닌 국가 통치권의 순결함을 강조하려는 안간힘으로 구체화된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주장하기 위해 ‘일본’이라는 절대악이 상정돼 있다는 사실에 있다. 영화 <한반도>의 논리적 위험성은 ‘일본’이라는 절대악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절차나 실리도 무시될 수 있다는 폐칩된 국가주의에 잠재해 있다. 극중에서 너무도 결단력 있게 그려진 멋진 대통령은 엄정한 의미에서 독단적 행정가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도덕이나 윤리를 그 어떤 정책 이상의 절대선으로 규정하고 관철하고자 한다.

문제는 대통령으로 설정된 자의 논리가 바로 국가제일주의라는 사실이다. 일본이라는 절대악에 대항하는 국가제일주의는 민족의 역사적 상흔과 결합해 반박의 여지없는 절대논리로 격상된다. 만일 이 논리를 부정하거나 고민하면 그는 매국노나 기회주의자로 매도당할 수밖에 없다. 타 국가에 대립하는 국가주의는 절대선이며 여기에는 반성의 여지조차 필요치 않다.

국가주의는 전 세계적 경향인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자국민의 이익과 권리를 최우선을 삼는다는 국가주의의 미명이 비단 <한반도>의 상황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실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최상의 윤리로 내세우는 국가주의는 911테러 사건 이후 미만해 있는 전 세계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를 가득 채웠던 세계화의 열풍, 통합된 유럽, 하나된 세계와 같은 동일성의 비전들은 21세기 들어 복잡한 현실적 문제들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계 불법 이주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부 유럽은 공공연히 이민법의 개정을 추구하고 있고 이는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북부 유럽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유럽의 위기에 대한 반성이 노골적 인종주의로 변질된 것 역시 하루 이틀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로 이민 정책’, 극우파의 득세 속에서 세계주의는 추방되고 단일 민족국가가 새로운 이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극우화되고 있는 유럽 정세의 흐름에는 911테러 이후 경색된 미국의 실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점에서 미국의 영화산업은 일찌감치 미국이라는 이념적 체계의 공고함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적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다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에서 ‘국가주의’는 말 그대로 이념 수준의 이데올로기적 추상일 수밖에 없다. 외적으로는 타자로부터의 침투를, 내부적으로는 차별과 차이의 극복을 강박적으로 반복생산하고 있는 미국영화의 속내는 바로 이 추상적 이념의 구체화를 향하고 있다.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2005년에 발표한 영화 두 편은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하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우주전쟁>은 갑작스런 타자의 침공을 스펙터클의 측면에서 보여준다.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을 통해 보여주는 공격의 외상은 거의 외설의 수준을 육박한다. 왜, 어떻게, 침공 받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고 무차별한 공격에 노출된 레이의 가족은 911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인의 형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건물 위로 쏟아지는 파편들, 무작위로 파괴하는 잔혹함으로 서술되는 외계인의 면모는 그들의 트라우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게다가 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내부에 침투에 자신의 몸집을 키우고 공격의 시점을 가늠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그들이 바로 ‘그들’임을 분명히 해준다. 오래 전부터 내부에 품고 있었지만 미처 현실화될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위험의 도래, 그것이 바로 미국인들에게 있어서의 911이기 때문이다. “우리만 당했다. 유럽과 아시아는 괜찮다더라”는 대사 속에 드러나는 피해의식에서, 우리는 미국이라는 제호 아래 자리 잡은 국가적 일원을 지칭한다.

언젠가 도래할 위험요소에 대한 기미는 <뮌헨>에서도 발견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치 상황에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진행되는 듯싶지만 <뮌헨>은 실상 보복주의 자체에 대한 공감을 표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 인해 복수조로 나선 이스라엘인들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피폐해진 피해자로 그려진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키 힘든 영화적 진행과는 달리 시작은 ‘그들’이었다는 문제제기는 분명하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메시지의 추상성과 달리 내면의 완고함을 갉아먹으며 자멸해가는 이스라엘 복수조와 대조적으로 911테러를 감행하는 팔레스타인 조직은 내면조차 휘발된 존재로 상상되고 만다. 내면이 휘발된 복수기계, 원인이 무엇인지도 잊은 채 복수에 강박된 존재들, 그들이 바로 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인 셈이다.

폴 해기스 감독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크래쉬> 역시 의미심장한 미국의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미국 내부의 오래된 만성질환이라고 할 수 있을 ‘민족’과 ‘인종’ 문제를 다룬 <크래쉬>는 인종과 민족을 너머의 화합을 추구하고 있다. 각각의 인종에 대한 편견들로 구축된 거리를 뛰어넘는 하나의 사건이란 어떤 점에서 911테러를 제유한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DNA를 구성하고 있는 미세한 유전자 조직에 대한 집착과 그것에 대한 편견을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있을 사건으로 ‘크래쉬’는 세부의 차이를 지우고 구분을 잠재운다. 폴 해기스의 <크래쉬>가 제안하는 화해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의 공포가 촉매한 순간적 교감이다. 이를테면, 자신을 성희롱했던 백인 경찰에 대한 흑인 부인의 용서는 그에 대한 이해나 정서적 공감이 아닌 불의의 사건을 통해 실현된다. 갑작스러운 사고 가운데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경찰,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 앞에서 민족의 차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과 같은 문제는 사치스러운 이념으로 추상화된다. 자동차 충돌 사건으로 인해 그 복잡하고 답답했던 문제가 ‘환상적으로’ 해결되는 셈이다.

사상 초유의 911테러 사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세계 문화계의 흐름은 폭력에 대한 반성으로 수렴되고 있다. 폭력에 대한 빼어난 사유를 보여주는 미카엘 하케네의 <히든>도 역시 그렇다. 알제리와 프랑스의 복잡한 국가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 하케네가 선택한 지점은 가해자의 피해망상이라는 모순이다. 자책감이 불러일으킨 공격 본능, 왜곡된 반성의 맥락 속에는 현재 유럽이 테러와 보복으로 얼룩진 현재를 바라보는 해석이 은닉돼 있다. 극우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 변질된 파시즘과 이기적 국가주의가 절대선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유럽은 지성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알리바이 말이다.

테러와 공포에 대해 새로운 국가주의로 무장하자는 미국의 논리나 그러한 편향된 외곬의 폭력성을 우려하는 유럽의 내성주의는 현재의 흐름 자체가 극우적, 이기적 국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어떤 점에서 일본이나 독일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벌어지는 극우 편향적 행위들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의 마지막 12일을 내면적으로 추적한 영화 <추락>이 제작되었고, 일본에서는 제국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한 일본 군인들을 소재로 한 <나는 당신을 위해서 죽으러 갑니다>와 같은 영화가 제작 중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영화들의 극우주의는 분명한 만큼 단순하고 미련한 바가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극우적 성향을 가리거나 위장하지 않는다. 이는 세계 경찰을 자임했던 미국의 가슴 아픈 실패담인 <블랙 호크 다운>이나 <하트의 전쟁>, <위 워 솔져스>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실패와 상흔을 직유로 제시하는 작품들의 파괴력은 미개인처럼 폭력적으로 그려진 소말리아인들의 묘사만큼이나 단순한 바가 있다.

심각한 것은 무의식의 수준까지 침잠한 세련된 영화문법들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보여주는 국가주의나 타 민족, 타 국가에 대한 경계는 드라마나 서사의 차원에서 발견되기 힘든 무의식적 경향을 띠고 있다. 미국의 무의식은 세계 대통령으로서의 호황기를 추억하는 과거 지행적 역사 드라마에서 잘 드러난다. 호황기 미국을 배경으로 성장한 뮤지션들이나 인물에 대한 추적, 역사적 미국의 양심에 대한 재발견은 미국의 자정능력을 강박적으로 대변해준다. 이러한 경향은 2005년 2006년 노미네이트된 아마데미 후보작들의 면면을 살펴봄으로써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애비에이터> <레이> <앙코르> <굿 나잇 앤 굿 럭> <시리아나>와 같은 작품들 말이다. 이를테면, <굿 나잇 앤 굿 럭>은 미국 내부의 정치적 부패에 대한 자기검열에 대한 추억 어린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다. 재즈가 넘실대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매카시 열풍을 잠재울 수 있었던 미국의 양심에 헌정된다. 언론의 기능과 의무를 수행하는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우는 진한 담배 연기의 아우라와 로우 앵글의 존엄성 속에서 추억된다. 최근 미국영화에 나타난 은밀한 국가주의의 면모는 미국의 문제는 미국이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환원적 자기논리를 배태하고 있다. 미국은 자기검열의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자신감, 내부의 문제를 내부의 다른 지성이 감시하고 교정할 수 있다는 우월한 정치의식 말이다.

국가의 논리는 절대선인가?

퍼블릭(public) 즉 공공(公共)은 국가 소유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즉 공공이란 모두의 소유권에 귀속된 국가적 관계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공중전화, 공공재산과 같은 조어 속에서 공공이란 바로 ‘모두의’ 것 이전의 ‘국가의’ 것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칸트는 공공을 매우 자기중심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은 어디에 있든지 공공적으로 생각하는 자, 지역주의를 통해 세계를 생각하는 자로 귀결된다. 그러니 칸트의 공공론은 지역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자기를 찾는 논리적 확장으로 귀결된다.

공교롭게도 칸트의 ‘공공론’은 <공공의 적>으로 부활한 강우석의 영화 논리를 연상케 한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론’의 시작이었던 <공공의 적>에서 공공의 적은 생명을 관장하는 신의 영역에 침범한 비윤리적 한 개인이었다. 공동체의 언어에 귀속될 수 없는 개인의 윤리를 관통하고자 했던 조규환은 말 그대로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우석이 호명한 공공의 적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를 죽이고 이유 없이 타인의 삶에 침범해 생명을 앗아가는 공공 윤리의 훼손자였다. 즉 <공공의 적>에서 ‘공공’이란 상식 수준의 보편적 윤리감각 그 자체를 지칭했던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강우석 감독의 ‘공공’론이 계속 전환되고 변질되어 심화되어 갔다는 점이다. <공공의 적 2>에서 ‘공공’은 검찰의 신성한 권리, 국가적 의무에 충실한 모범으로 축소된다. <공공의 적 2>에 등장한 ‘공공의 적’은 인간의 윤리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의 공공성을 위배하고 있다. 한상우는 조규환처럼 인간의 기본적 윤리에 위배해 있다기보다 사회적 시스템의 음지와 빈 곳을 속속들이 활용하는 자다. 공공의 시스템을 변칙적으로 운용한다는 점에서 한상우는 ‘공공의 적’으로 호명되고 이에 대해 검찰 강철중이 응징한다. 윤리강의 및 도덕 업으로 비판됐던 <공공의 적 2>의 불편했던 부분은 바로 이점, ‘공공’의 의미가 공무원이 해야 할 공적 임무의 엄정성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강철중이라는 인물에 압축된 ‘공공성’은 한 사람의 개인이 사회의 공공성을 견인할 수 있다는 파시즘적 영웅주의와 다를 바 없다. 실상 한 사람의 힘으로 교조될 ‘공공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위험한 제안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반도>에 등장하는 배타적 국가 윤리로서의 ‘공공성’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이미 강우석 감독의 영화 속에서 ‘공공’의 의미는 한 개인의 윤리적 사명감으로의 변질을 충분히 예고하고 있었다. 문제는 ‘공공의 도’를 설파하는 강우석 감독의 논리가 일본이라는 미묘한 문제와 조우하면서 일종의 민족주의적 만족감과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우석이 내세우는 ‘국가의 논리’는 민족의 논리도 개인의 논리도, 정치적 신념이나 가족의 윤리도 부정하는 절대선이다.

물론 강우석 감독이 제안하는 국가의 이권이나 국가의 체면과 자존심은 우리의 현대사가 놓쳐온 아픈 상처임에 분명하다. 국가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느라 나라를 파는 데 일조한 조선 말기의 정치가들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박제될 수밖에 없는 원죄의 주범이다. 강우석 감독의 말마따나 대한민국과 민족의 자존심은 그 어떤 복잡한 국제 정세가 있었다 하더라도 지켜내고자 했음에 마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윤리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는 위험하고, 위험한 만큼 허전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한반도>가 제시하고 있는 국가주의는 대한민국의 공공성이 추구하는 환상에 가깝다. 그것을 환상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은 <한반도>가 마치 동화처럼 현실성 없는 대안으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자존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대통령, 국가의 위기가 현실화되기 직전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공공을 택한 정치인, 조인식 직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대통령과 같은 영화적 설정은 통쾌하기는 하지만 현실적 개연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격정일 뿐이다. 오히려 <한반도>가 보여주는 면모들은 현재의 정치 맥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재를 환상적으로 재현한 통쾌한 놀이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판타지 속에는 대통령과 몇몇의 선각자만 있을 뿐, 민족이라는 실체는 휘발돼 있다. 유능한 정치가 몇 사람의 흥분과 격정이 만들어낸 한국역사의 개가란 민족주의의 휘장을 쓴 국가주의적 면모와 다를 바 없다. <한반도>에 그려진 대통령과 몇몇 정부 요인들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람보’처럼 화끈하다. 그런데 과연 국가의 자존을 살리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통령과 국가 이념의 환상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일까? <한반도>의 대통령은 ‘람보’처럼 종횡무진 하지만, 또 한편 “람보”처럼 허구적임에 분명하다. 아마도 진정한 민족주의는 낙백한 자의 환상적 자위(自慰)나 국가주의와는 다를 것이다. 문제는 영화 <한반도>가 표방하는 극우적 민족주의나 애국주의가 아니라 그것의 허구성이라는 뜻이다. 허구적 애국주의와 환상적 국가주의의 표피를 거둬냈을 때 남아 있는 것은 강우석 감독의 앙상한 ‘공공론’이다. 그러나 ‘공공’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한 개인의 철학으로는 규명될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하다. 어두움보다 환상의 광휘가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기사제공 : FILM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