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외부에 공개되지 않던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오는 7월 개봉하는 픽사 스튜디오 일곱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카>를 처음으로 공개하기 위해 전세계의 상춘객들을 맞아들인 것이다. 굳게 닫혀있던 세계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지난 3월 초, 픽사 스튜디오 취재를 위해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곳에 첫 발을 내딛는 과객이라면 한번쯤 떠올릴 법한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는 노래가 무색할 정도로 하루에도 몇 번씩 맑고 흐리기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지나다니는 버스에 붙은 ‘<니모를 찾아서> 아이스쇼’ 광고물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니모’의 고향에 왔다는 설렘이 시작됐다.

픽사스튜디오가 위치한 에머리빌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버스로 20여분 거리. 샌프란시스코와 주변의 소도시를 잇는 베이 브리지를 건너 도착한 픽사 스튜디오는 이미 봄의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정문에 걸린 ‘PIXAR’라는 간판 뒤로 21만8,00 평방 피트 부지에 거대한 저택을 연상시키는 픽사 건물과 대학 캠퍼스 같은 연두색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놀이터 같은 직장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으로 가로질러 픽사 스튜디오 내부에 들어서자 외부와는 또 다른 광경이 들어왔다. 햇볕을 그대로 투영하는 넓은 천장과 원목으로 지어진 온실 같은 내부. 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픽사 스튜디오가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2층을 올려다보니 편안한 차림의 직원들이 퀵보드를 타고 구름다리 사이를 지나다닌다. 오, 이곳이 바로 850여명의 애니메이터와 스토리 작가들이 일하는 놀이터 같은 직장이렷다.

중앙 로비홀 집합한 취재진들이 그룹으로 나뉘어 본격적으로 픽사 스튜디오를 탐방할 시간이 주어졌다. 픽사의 기록 보관 담당이라는 특이한 직함을 지닌 랜디 닐슨 씨가 한국 취재진들의 안내를 맡았다. 픽사 스튜디오는 중앙홀을 사이에 두고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는데 그의 안내에 따라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2층 동편 복도 갤러리였다. 이곳은 최신작 스케치와 파스텔화 점토모형을 전시하는 곳으로 최근작 <인크레더블>을 위해 만들어진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은 곧 최신작 <카>의 작업물들로 교체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은 복도에 전시된 <토이스토리>의 조각상들을 만났다. ‘비주얼 폼’이라고 하는 이 조형물들은 하나의 미술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교한 작품들이었다. 랜디 닐슨의 설명에 의하면 “이 조형물들은 비주얼 인포메이션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세계(world), 즉 규칙이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캐릭터들 역시 욕망을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순수미술 형태의 캐릭터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이 조형물들은 리더십을 공유하고, 정보 전달과 문제해결의 솔루션 역할을 한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이나 과장기법에도 중력의 법칙과 역학이 적용된다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한 장의 그림을 움직이게 만드는 단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복도 벽에 걸린 액자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우리에게 친숙한 인크레더블 부부의 모습이다. 주인공의 낚시사진과 웨딩사진. 캐릭터들의 다이나믹한 표정을 담은 이것을 일명 이미지포토 액자라고 부른다. 하와이안풍 셔츠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입은 셔츠를 자세히 살펴보니 네모상어 캐릭터 패턴으로 바로 <니모를 찾아서>의 캐릭터. 이렇게 전작들의 캐릭터들을 다음 작업에 인용하는 것은 작업자들에게 자극제 역할을 한다.

픽사의 2층 작업실들은 모두 투명한 유리벽 구조로 건너편의 작업실 풍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업실 사이에 마련된 회의 테이블에서 열심히 토론 중이던 직원들과 마주치자 랜디 닐슨이 양해를 구하고 취재진들과 인사를 나누게 한다. 진지한 회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티타임 분위기다. 모두들 유쾌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는다.


남쪽으로 난 복도 끝에 이르자 모던한 회화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그림 한 폭이 벽에 걸려있다. 이것은 컬러 스크립트라 불리는 비주얼 맵이다. <인크레더블>의 비주얼맵으로 밝은 색은 ‘액션’을, 곡선은 ‘긴장감이 덜한’ 전체적인 균형을 나타낸다고.

2층 동편을 둘러본 뒤 다시 1층 중앙홀로 내려와 잠깐 머물던 휴게실을 둘러보게 됐다. 1층은 식당과 직원들의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1층 카페 이름도 픽사의 아이콘이 ‘룩소 카페’다. 식당 맞은편에는 비디오 게임기와 테이블 축구대가 있는 게임룸과 오락기기가 설치되어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작업실에 있던 직원들이 이곳으로 쏟아져 나와 머리를 식히고 미팅을 갖는다.





활기 넘치는 애니메이터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서편 1층은 엔지니어, 테크니션 같은 기술파트 직원들의 작업실과 마사지테라피실, 헬스장이 있는 곳. 마침 타월을 두르고 건물 밖에서 들어선 직원 하나가 단체 일행을 보고 쑥스럽게 들어간 곳이 바로 헬스장으로 근무시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농구장, 축구장, 수영장, 노천극장이 취재진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직원들이 재미있고, 활기에 넘쳐야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존레스터의 말을 랜디 닐슨 씨가 대신 전한다.

건물 바깥을 둘러보고 2층 서편 작업장을 둘러보게 됐다. 작업에 영감을 주는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된 포토 갤러리와 스토리 코너,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공모, 전시하는 개그 세션은 스튜디오에 떠다니는 직원들의 작은 아이디어를 하나라도 놓칠까봐 작업공간 정체를 아이디어화 시켜놓은 듯 했다.

작업실을 지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픽사의 동력이라 일컬을 수 있는 서버실 ‘렌더 팜(Render Farm)이다. 수 십대의 컴퓨터가 애니메이션 데이터들을 디지털 수치로 작업하 이곳은 바로 픽사의 심장부. 취재진들에게 특별히 보안과 조심을 요구하는 멘트가 전해져 온다. 더군다나 컴퓨터가 과열되지 않게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 서늘한 공기 마저 느껴진다.

이곳에서 프레임을 데이터화하는 렌더링 작업은 최소 6시간, 시물레이션은 11시간, 연기하는 장면은 최대 90시간까지 소요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중 하나가 있으며 대부분의 컴퓨터는 20년 동안 픽사의 심장 역할을 한다고 한다. 너무 오래 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지금까지 별 탈없이 뛴 건강한 심장들이다. 이들은 18개월 마다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다.


1시간 여의 픽사 스튜디오 탐방을 마치고 나니 처음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눈에 띈 자동차 그림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이미지 갤러리라 불리는 각 코너 벽마다 붙어 있는 이 그림들은 바로 애니메이션 <카>를 회화풍으로 그린 그림들로 일종의 ‘컨셉 아트’라고 칭한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구체화 하는데 영감을 제공하는 이 그림들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교체된다.

픽사 스튜디오가 이곳 에머리빌로 이전한 시기는 지난 1998년, 이전에는 에머리빌에서 15분 거리인 리치몬드 시내에 있었다. 이 장소의 유력 또한 흥미롭다. 전에는 과일 칵테일 공장이었고 그 전에는 야구장이었던 이곳에 3D 애니메이션의 세계적인 공장이 지어지다니 말이다.

이제 오는 7월 신작 <카>를 세상에 공개할 픽사 스튜디오는 다시 한번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미처 공개하지 않은 공간에서 이미 진행 중에 있을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고, 이곳의 활기찬 공기가 그대로그들의 결과물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하며 픽사 스튜디오의 문을 나선다.



기사제공 : [맥스무비 2006-05-08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