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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 영화제에 철저한 계급이 있는 까닭은? |
| 글쓴이 : 이자연
글쓴날 : 03-06-01 01:48
2072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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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백 주소 : http://iskyi.com/iskyi4/bbs/tb.php/Movie_BOARD/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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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화부 이자연기자입니다. 저는 최근 영화제의 꽃으로 불리는 칸 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신분계급사회는 인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가 본 칸 영화제야말로 카스트제도 이상으로 철저한 수직적 계급사회이더군요. 칸 영화제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을 세계에 알린 축제지만, 영화와 관계없는 일반인은 (자자손손 칸에 살아온 주민이라도) 절대 출입할 수 없는 특이한 영화제입니다. 영화를 보거나 마켓에 참가하기 위해선 개막 한달여전까지 신청서와 구비서류를 보내 아이디카드(현지에서는 ‘뱃지’라고 합니다)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제 경우 지난해 조선일보에 난 칸 관련 기사 3건, 제가 쓴 영화 기사 3건, 올해는 지난해와 다른 참가자를 보낸다는 부장의 인증서를 사진과 함께 보내야 했습니다. 이 까다로운 절차 끝에 손에 쥐게 된 한 장의 얇은 분홍색 아이디카드! 이것은 칸에서는 거의 엄청난 권력이었습니다.
칸 영화제가 열리는 해변 크로와제 거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인파가 넘쳐나지만, 대부분 목에 이 아이디카드를 걸고 있습니다. 메인하우스인 ‘팔레 드 페스티발’에 들어갈 때도, 그 안에 있는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때도, 컴퓨터가 비치된 프레스 센터에 들어갈 때도, 개인 캐비넛을 열 때도 이 카드가 필요합니다. 경비원들이 매번 일일이 카드의 사진과 얼굴을 대조하지요.
취재기자의 카드는 오렌지색 줄에, 마켓에 참가한 영화업계 종사자의 카드는 흰 줄에 달려 있지요. 이들 대부분은 칸에서 받은 가방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가방은 황토색이고, 마켓 참가자들의 가방은 회색이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 목줄과 가방 색깔만 봐도 뭐하러 칸에 온 사람인지 드러나는 셈입니다. 소속사와 이름이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이, 어쩐지 애완견이 된 기분까지 들게 합니다.
아이디카드는 신분별로 네 가지 색깔로 나뉘어집니다. 신분상 가장 높은 것은 페스티발 카드로, 영화제작협회 잭 발렌티 회장 같은 특별한 초청자에게만 특별히 발급됩니다. 김동호 부산영화제 위원장에게도 이 카드가 발급됐는데, 김 위원장의 카드에는 오랜 기간 매년 칸 영화제를 찾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동그라미까지 찍힌답니다. 일부 제한된 파티 등에 들어갈 수 있고 시사회장에서도 항상 좋은 자리가 확보되는 특권이 주어지니, ‘칸’이라는 왕국에선 거의 신에 가까운 위대한 신분입니다.
프레스 카드는 취재기자의 경우 매체의 역사와 파워, 전문성 정도에 따라 흰색과 분홍색, 파란색, 사진기자의 경우 회색, 주황색 등으로 나뉘어집니다. 흰색은 언론의 제왕입니다. 아무리 겉보기엔 볼품 없어도 흰색 카드를 걸고 있으면 칸에서는 ‘왕족’이지요. 극장이나 기자회견장 입장이 철저하게 흰색-분홍색-파란색 순서로 이루어지니 부러울 수밖에요. 흰 카드는 시카고선타임스의 로저 에버트, 버라이어티지의 토드 매커시 같이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칸 영화제를 방문한 유명한 영화리뷰어들에게 발급되는 훈장입니다. 원래는 영화가 시작하면 관객 입장을 통제하지만, 이 하얀 카드만 척 내밀면 아무리 늦게 도착했어도 극장 입구의 삼엄한 경비원들이 눈을 내리깔며 스스스 뒤로 물러나게 하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합니다. 국내 언론은 참가기자가 해마다 바뀌는 속성 때문에 아직 흰 색 카드를 가진 사람이 없지요.
그 다음이 제가 갖고 있는 언론의 귀족, 분홍색 카드였습니다. 흰색 카드를 소지한 사람은 아주 드물기 때문에 보통은 분홍색 카드로도 귀족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국내 일간지의 경우, 대체로 이 분홍색 카드를 받습니다. 파란색 카드 소지자 수백명이 아무리 오래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도 상영시간에 맞춰 느릿느릿 극장에 도착한 분홍색 기자들이 먼저 들어간 뒤에야 차례가 돌아옵니다. 분홍색 기자들로 극장이 다 차버리면 파란색 기자들은 2층 발코니석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같은 분홍색 카드 소지자라도 약간 더 우대할 사람은 노란 동그라미를 찍어 줍니다. 닷컴 기업에 일하는 건 아니지만 동그라미(dot)을 갖고 있다는 뜻에서 이런 사람들을 농담삼아 ‘dot-com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dot-comer들은 기자 전용 시사회 뿐 아니라 모든 시사회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습니다. 너무 복잡하다구요? 어차피 dot-comer들 중에도 자기 카드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분홍색 no-dot-comer들도 남의 카드에는 동그라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고요.
국내 영화 주간지의 경우에는 파란색 카드를 받기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서도 본의 아니게 계급차가 벌어지게 되더군요. 잡지사 선배들이 몇십분동안 길게 줄을 서 있는 앞으로 유유히 분홍색 카드를 들고 먼저 들어가려면 좀 미안한 기분이 들지요. 그렇다고 남에게 카드를 빌려줬다가는 사진 확인절차에 걸려서 카드를 뺏기는 등의 페널티를 받기 때문에 절대 금물입니다. 그리고 드문 경우지만 분홍색 카드 소지자들도 하층민의 설움을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평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우디 앨런이 지난해 칸에 나타나자, 그 흔치 않은 흰색 카드 소지자들이 전부 기자회견장에 모이는 바람에 분홍색 기자들도 다 못 들어갔다고 하네요.
회색 카드는 사진 기자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계급입니다. 그러나 두 단계 뿐이니까 회색 카드 소지자들 사이에서도 편차가 다양합니다. 주황색 카드는 바로 다음 단계지만, 사진기자로서는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 사진 작가, 나쁘게 말하면 파파라치들도 이 카드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레드카펫 위를 걷는 스타를 찍으려고 사진 기자들끼리 자리싸움을 벌일 때도 회색 카드는 아무래도 우대를 받겠지요.
모든 사람의 계급이 철저히 나뉘어지는 처음엔 비인간적인 것 같고 낯설었지만, 일단 계급에 순응하고 나니 취재하기에는 여러모로 편하더군요. 하지만 귀족 계급인 분홍색 카드에 만족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영화 기자들 수준이 생각만큼 높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 생각이 더욱 절실해지더군요. 각각의 매체 발행부수나 지명도도 계급 선정의 기준이 되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국력 아니겠습니까? 그 나라 기자가 뭐라고 기사를 쓰든 하등의 영향이 없다면, 영화제측에서 뭐하러 좋은 카드를 주겠습니까.
칸에서 만난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양준 프로그래머는 “시사회장이나 기자회견장에 자국 기자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시사회 분위기도 달라지고 영화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남의 나라 영화에 대해선 언어나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보기 마련이니까, 전반적인 청중 반응을 많이 참고한다는 얘깁니다. 자국 기자들이 깔깔 웃거나 상영이 끝난 뒤 환호를 보내면, 시차에 시달리며 무덤덤하게 보던 외국 기자들도 “딱딱하게 번역을 해서 그렇지 원어로 들으면 재미있나 보다” “나는 별로였지만 평단 반응은 좋은데?” 같은 착오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자국 기자들이 아무리 많이 가도 전부 파란 카드라면, 아무래도 (극장에 많이 들어가질 못하니까) 시사회장 분위기를 좌우하기 어렵겠지요.
지난 해 ‘취화선’이 상영될 때 한국기자들이 많았다면, 아니 외국기자라도 한국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기자들이 많았다면 객석 분위기가 한결 더 흥이 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적인 영화계 인사들이라고 해도 조선시대 문화를 이해하면서 본 사람은 드물었을테고, 자막보다 더빙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어려운 고어 번역문을 빨리 읽어내기란 더욱 까다로웠을테니까요. 아무쪼록 하루빨리 우리나라 언론도 왕족(흰색 카드)으로 상향평가 받아서 당당하게 맨 먼저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내년에는 경쟁부문 상영작 가운데 한국 영화를 볼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이미 아시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부산 국제영화제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돋움해, 세계의 영화인들이 부산 영화제 아이디카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날이 오면 더욱 더 좋겠습니다.
<hr size=1 color=#eeeeee width=95%> <img src='http://www.technote.co.kr/technote-top/image/face/bitimg14.gif' border=0 alt=''> <b>장유정:</b> 자세한 내용 잘보고 한편으론 민주,평등을 외치는 시점에서 왠지모를 쇠외감과 세상이 변해도 세월이 흘러도 돈과 배경은 무시못하는 세상이 넘 속상하네요 요즘 나라가 시끄럽고 국민이 서로 자기의 이익만 챙기려는 현실 오늘은 장마까지 시작 비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괜히 울적해집니다 -[06/23-11:41]-
<hr size=1 color=#eeeeee width=95%> <img src='http://www.technote.co.kr/technote-top/image/face/bitimg32.gif' border=0 alt=''> <b>메멘토모리:</b> 그래 도데체 이유가 뭐대요.. 제목은 '~~~까닭'은 해놓고 사실만 설명한 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엄네요. 이러니까 내가 신문을 안 읽지. 제목을 똑바로 달든지, 글을 똑바로 쓰든지. 이거 완전 동문서답이잖아요. 계급적 서열이 있는 곳이 어디 칸 뿐이랴.. 그걸 어떻게 파헤쳐보느냐가 중요한거지. 순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그러니까 조선일보 기자나 하고 앉아있지. -[06/25-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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