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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히치콕
  글쓴이 : 김혜리    글쓴날 : 03-03-05 12:28    2610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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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탄생 100년
- 스릴러 치고 안베낀 작품 있을까?!
<히치콕 연표>

▲1899년 8월13일 런던 출생
▲1923년 '항상 아내에게 말하길'로 감독 데뷔
▲1929년 첫 유성영화 '블랙메일'
▲1935년 '39계단'
▲1940년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영화 '레베카' 연출
▲1948년 첫 컬러영화 '로프'
▲1954년 '이창'
▲1957년 '현기증'
▲1959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1960년 '사이코'
▲1963년 '새'
▲1976년 '가족의 음모'
▲1980년 4월29일 로스엔젤레스에서 사망

스릴러의 거장
어떤 이의 생일파티는 영원히 계속된다. 1999년 8월13일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1899∼1980)이 태어난지 100년 되는 날. 몇해 전 100살을 자축했던 영화계는 거장의 한 세기를 기념하느라 다시 들떠 있다. 이미 뉴욕 현대미술관이 미공개 자료 상영을 포함한 행사를 마쳤고, 국제적 히치콕 심포지엄이 오는 10월 뉴욕에서 열린다. 할리우드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기념 이벤트를 준비하고 유니버설 영화사는 히치콕 작품 13편을 순회상영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이 퇴색하지 않는 매혹을 설명할 수 있을까.

19세기 끄트머리 런던 동부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은 태어났다. 경관을 시켜 아들을 벌 주던 아버지와 종교 계통 학교의 엄한 훈육 속에서 소년은 공포와 친밀해졌다. 무성영화 자막 담당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히치콕은 1925년 데뷔 후 오래지 않아, 촉망받는 스릴러 감독으로 부상한다. 그의 영화들은 소비에트 몽타주와 박력있는 할리우드식 편집, 그리고 독일 표현주의의 그림자로 빚어졌다.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의 부름으로 히치콕이 도미한 해는 1939년. 그러나 할리우드는 그들이 불러들인 재능의 실체를 미처 알지 못했다.
할리우드 입성작 '레베카'(40년)부터 마지막 영화 '가족 음모'(76)에 이르기까지 히치콕은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를 발명하고 혁신했다. 설정은 언제나 단순했다. 선량한 자가 누명을 썼다.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누군가 사람을 죽였다. 어떻게 벌받을 것인가. 하지만 그 '어떻게'를 풀어가는 히치콕의 연출은 수학적 정밀함으로 조바심과 쾌감을 유도했다. 교묘한 시점 샷들은 관객을 희생자와 악인, 그리고 훔쳐보는 자 위치로 쉴새없이 몰고 다니며 도덕적 혼란에 빠뜨렸다.

히치콕은 영화란 대사 도움없이 이미지 힘으로 승부한다고 믿은 순수주의자였다. 또한 철저히 계산된 촬영으로 제작사의 가위질을 원천봉쇄했다. 그같은 결벽을 고집한 히치콕의 재능은 스튜디오 시스템과 겨루어 결코 꿀리지 않았고, 50년대 프랑스 평론가들은 그에게 작가 칭호를 바쳤다.
다산형 감독 히치콕에게도 50년대는 특별히 풍요로웠다. 영화보는 행위에 숨긴 은밀한 관음증을 고백한 '이창'(54)과 존재론적 공포를 다룬 '현기증'(58), 서스펜스 편집의 교과서 '사이코'(60)가 그 뒤를 밟았다.
거대한 산이 그렇듯 히치콕 영화는 보는 각도와 시점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영화 이론도 늘상 히치콕에서 다음 갈 길을 보았다. 그는 작가주의 비평의 언덕이었고 정신분석, 페미니스트 비평에도 글감을 제공했다. 최근에는 히치콕을 역사적 정황 안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히치콕은 작가의 월계관을 비뚜름히 쓴 엔터테이너였다. 위트 넘치는 어록을 남겼고,수시로 카메오가 돼 '스파이'처럼 자기 영화 속에 숨어들었다.
평론가 앤드루 새리스는 히치콕 영화가 진지한 영화치곤 관객에게 너무 많은 쾌락을 준 '죄'로 홀대받았다고 썼다. 하지만 히치콕은 영화감독이 자아에 충실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했다.

명품은 연륜을 입을 뿐 낡지 않는다. 21세기에도 히치콕 영화들은 밀실과 광장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모든 사람 곁을 서성일 것이다.

<김혜리 영화평론가> 1999.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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