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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환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장인에서 작가까지...
  글쓴이 : 유지이    글쓴날 : 05-12-28 16:16    3149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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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평론의 전통에 따라 매체에서 흔하게 쓰이는 용어를 정리해보자. 통상 영화 매체에서 '작가'와 '장인'은 둘 다 솜씨 좋은 감독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꽤 다르다. 우선 '작가'는 감독의 이름을 건 영화에 강렬한 개성을 덧칠하거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아 놓는 (혹은 모두를 겸비한) 고집이 있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한국 영화광 사이에 이름 높은 스탠리 큐브릭이나 팀 버튼을 강렬한 개성의 이름으로 '작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고, 영화사 책 한번 들쳐보았다면 마주쳤을 비토리오 데 시카나 잉그마르 베르히만 같은 감독을 삶에 대한 철학으로 '작가'로 분류할 것이다. 이와는 차이를 보이는 '장인'은 영화를 연출하는 훌륭한 기술을 갖추었지만 (혹은 나쁘지 않은 솜씨를 갖추었지만) 개성이나 독자적인 철학을 표출하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영화 제작자의 요구나 상업적 판단을 더 우선시 하는 감독에게 흔히 붙이는 단어다. 나쁘지 않은 솜씨를 갖춘 쪽이라면 한 시대에 수많은 영화 감독이 이 분류에 속할 것이고, 빼어난 솜씨를 갖춘 쪽이라면 '스타일리스트'라는 호칭으로 '작가'급 명성을 얻기도 한다. 우리 시대라면 조엘 슈마허나 레니 할린 같은 감독에게 '장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그 동안의 평판으로 보자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장인'에 가깝다. 그의 이름을 건 영화가 가공할 흥행력을 갖추었거니와 러닝타임이나 시나리오의 균형에서 절묘한 상업 감각을 갖추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스필버그 영화가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칠게 정리하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를 찍는데 훌륭한 솜씨를 가졌지만 상업적 성격이 강하고 깊은 고민 끝에 영화를 내놓지 않으므로 '장인'으로 분류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이 '장인'이란 단어가 참으로 미묘하다. 일단은 좋은 솜씨를 가지고 있는 감독에게 붙이는 칭호이므로 양립하는 성질을 한 번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화려하고 독보적인 비주얼을 갖춘 이에게 '장인'은 아쉽게도 철학과 개성이 부족해 솜씨가 아깝다는 뜻 정도의 부끄러운 호칭이지만, 제작비를 틀어쥐고 있는 헐리웃 스튜디오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할 줄 아는 월급쟁이 감독이라는 의미의 '장인'은 존경의 헌사가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이 호칭이 사용되던 역사에는, 활동 당시에는 나쁜 의미의 '장인'이었다가 경력의 말미에는 존경의 '장인'이 되고 사후에는 재평가되어 '작가'의 만신전에 오른 알프레드 히치콕같은 경우가 있나 하면, 활동 당시에도 존경받은 '장인'이었다가 사후에 '작가'로 인정받는 빌리 와일더나 하워드 혹스같은 헐리웃 장르 황금기의 감독도 있다. 요즘이라면 80년대에 빼어난 '장인'의 경지를 두드리다 90년대 아리송한 범작으로 흔한 '장인'이 아닌가 의심을 받더니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작가'급 인정을 받는 브라이언 드 팔마같은 경우가 있겠다.

지금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느 정도 위치에서 장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과거부터 알아보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항상 장인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지만 위치는 부침이 심했던 감독이다. 아마도 장인이라는 타이틀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스펙트럼을 겪었던 감독이 있다면 현존하는 사람 중에는 스필버그가 유일할 지도 모른다.


신동 스티븐 스필버그, 1970년대



몇몇 단편영화와 TV 시리즈 연출을 거쳐 경력을 쌓은 스필버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1971년에 공개된 TV 방영용 영화 <대결>이었다. 매우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TV 영화는 한국 공중파나 케이블을 통해서도 스필버그의 초기작으로 심심치 않게 소개되는 작품이니 이미 많은 분들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고속도로를 여행하는 한 남자가 영문도 알 수 없이 자신을 노리는 대형 트럭에 맞서는 공포를 그린 스릴러 영화로, 소규모 자본과 제한된 조건 하에서 교묘한 연출과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각본으로 효율적인 영화를 만들어 스필버그라는 이름을 당시 영화계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독립 TV 영화인 <대결>을 통해 시리즈물 감독에서 벗어난 스필버그는 이후 TV용 호러와 스릴러 영화를 2편 더 찍으며 극장용 장편 데뷔를 준비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으로 영화관에 처음 걸린 장편 영화가 1974년작 <슈가랜드 특급>으로 감각적인 연출과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당시 한창 미녀배우를 길을 밟아가던 골디 혼을 주연으로 기용하고 텍사스에서 남편과 함께 납치와 범죄를 저지르며 유명해진 금발 여인의 실화를 각색해 만든 <슈가랜드 특급>은, 위트있는 진행으로 씁쓸한 범죄를 다룬 조금 더 경쾌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같은 영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일련의 TV용 영화로 이름을 얻고 <슈가랜드 특급>의 연출력을 인정 받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당시 '신동'소리를 듣는 헐리웃의 유망주였다. 당시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보는 시선은 오히려 장래성 있는 '작가'에 가까웠다. 호러와 스릴러라는 장르는 신인 감독의 감각을 알아보기 쉬운 영화고, 데뷔작은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소화한 재치 있는 작품이었으니까.



그러나 세계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역시 '흥행의 마술사'로가 아니었을까.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죠스>의 감독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맡게 되면서 스필버그는 블럭버스터 혹은 흥행의 대명사가 된다. 당연한 것이, 영화 산업에서 블럭버스터는 통상 전미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를 뜻하는데, 최초의 사례가 바로 <죠스>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를 벌건 대낮에 그것도 해변이라는 장소에 절묘하게 이식한 출중한 연출력과 브라스 밴드를 기용한 음악을 공포의 도구로 사용하는 기발함까지 재치있는 구석이 호평을 얻은 <죠스>였지만, 진정 돌풍이 된 것은 이전 <엑소시스트>가 가지고 있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불멸의 블럭버스터가 된 다음부터다. 겨우 서른의 나이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덕분에 이런 빠른 흥행 경력을 가진 감독들이 흔히 그렇듯 필생의 야심작에 도전한다.

스필버그 뿐 아니라 SF팬에게는 공통적인 공상 중 하나가 있는데, 바로 지적 능력을 가진 외계 생명체와 지구인이 최초로 접촉하는 순간이다. 보통 SF에서 '최초 접촉First contact'라 부르는 이 순간을 형상화 하려는 욕망을 가진 작가는 매우 많아서 SF소설 쪽이라면 아서 C. 클락의 <라마와의 랑데뷰>나 칼 세이건의 <콘택트>같은 작품이 그런 상상의 결과물이다. 스필버그도 그런 욕망이 있었던 듯, 사실적인 상상으로 외계인과 지구인이 처음 만나는 순간을 영화화 한다. 전반기 스필버그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미지와의 조우>는 피터 잭슨에게 <킹콩>이 그런 것처럼, 뤽 베송에게 <제 5원소>가 그런 것처럼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를 시작하며 벼려왔던 야심작이었다.

초창기 스필버그의 이력을 들춰보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야심작 <미지와의 조우>와 코미디에 도전한 <1941>이 개봉한 1979년까지 스티븐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는 장인보다는 작가에 가까워 보인다. 당시 스필버그는 재치있는 연출과 영화에 대한 이해를 인정받고 있었고, 영화에 대한 시도도 대단히 진지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필버그의 이미지 대부분이 1980년대를 거치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흥행의 마술사 혹은 명제작자,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야심작을 만들었지만 나이나 경력에서 아직 헐리웃 스튜디오에 충분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지 못했던 감독 스필버그에게 <미지와의 조우>의 최종편집권이 주어지지 못한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야심작의 최종편집권을 놓고 싸우는 와중에 개봉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던 <미지와의 조우>와 흥행 실패였던 <1941>의 결과는 비젼이 흘러넘쳤던 젊은 감독에게는 큰 시련이었으리라.

마침, 큰 성공을 하지 못하리라 보았던 <스타워즈>를 완성하고 흥행 성공 시킨 비슷한 또래의 감독 조지 루카스도 영화를 찍는 내내 영화사 중역진에게 받은 압박과 제작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터였다.(실제로 <스타워즈>의 첫 편은 매우 적은 제작비가 책정되었기 때문에 젊은 스ㅤㅌㅔㅍ들의 고난과 노동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작자로 전업하기로 하고 30년대풍의 싸구려 모험극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조지 루카스와 야심작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내고 가벼운 영화를 통해 감각을 살리려고 마음 먹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만남이 1981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편 <레이더스>를 통해 세상에 선을 보인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흥행 대성공. 이후 1989년 세번째 작품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이 나올 때까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제작자 조지 루카스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황금 콤비의 간판 같은 작품이 되었고, 수많은 아류를 만들어낸 흥행작이었으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게는 소규모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이용해 단기간에 쓸만한 영화를 만드는 요령을 깨닫는 산업 감각을 키우는 교육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1982년,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화두였던 외계인과의 만남을 영화화한 작품을 순식간에 내놓는데, 전설이 된 그 영화다.

루카스와의 파트너쉽으로 완성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개인에게는 최적의 제작비와 일정을 조율하여 영화를 만드는 상업 영화 감독의 기술을 완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이 헐리웃 영화 제작자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존재가 된 것은 이 때 체득한 장인의 기술 때문이 크다.

(비슷하게 대형 흥행 영화를 만드는 제임스 카메론이 항상 정해놓은 제작비와 기간을 지키지 못한다던가, 스필버그만큼이나 지명도 있는 이름이 된 팀 버튼이 매번 제작자가 예상 못한 방향으로 튀는 강한 개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 둘 다 대형 영화사의 중역진이 좋아할 성격의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1990년대를 관통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은 감독 이상의 영역에서 헐리웃을 움직여 왔다.

감독으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관통하며 상업 감각을 얻고 < E.T >를 통해 헐리웃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면, 이렇게 얻은 지식을 이용한 방향은 감독보다는 제작자로의 역할에서였다. 곰곰히 기억해 보면 80년대에서 90년대에 흥행을 노린 광고 문구로 비일비재하게 사용되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은 대부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였고, 영화 제작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빼어난 재능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스필버그 사단의 유능하고 젊은 감독에서 지금은 거물이 된 로버트 저메키스가 <백투더퓨처> 시리즈의 감독을 맡았던 것도 스필버그의 지휘 아래서 였고, (스필버그가 제작자로 초창기에 만든 <백투더퓨처>는 제작 과정과 캐스팅까지 제작자로서 스필버그의 독특한 일화를 많이 남긴 영화로 유명하다) 조 단테의 위트 넘치는 코믹 호러 <그렘린>이나 아동 모험극의 모델이 된 <구니스>같은 영화부터 <폴터가이스트>를 통해 토브 후퍼를 헐리웃 주류로 불러낸 것도 제작자로서의 스필버그였다. 헐리웃 시스템에서 스튜디오에서 영화 감독을 독립시킨 지각변동을 이끌어낸 공로까지 합치면 제작자 스필버그의 족적은 80년대 헐리웃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영화감독으로 빛나는 재능을 인정 받았던 70년대의 스필버그에 비해 80년대와 90년대의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의 흥행 장인과 <태양의 제국><칼라 퍼플><쉰들러 리스트>로 완성된 오스카풍 작가의 길을 걷지만, 작가로서의 평판은 조금씩 후퇴해 왔다. 이는 제작자로 얻어낸 기록적인 성공 때문에 감독으로의 평판이 가려진 까닭도 있지만, 초창기에서 별다르게 달라지지 않는 스필버그 영화의 미학적 성취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처럼 순진한 눈으로 어른들의 냉혹한 세상을 바라보는 스필버그의 시선은 <미지와의 조우>를 거쳐 에서 절정에 달했지만 <태양의 제국><후크><쥬라기 공원>을 거치는 동안 ‘여전히 유치하다’며 ‘피터팬 신드롬’ 혹평의 대상이 되었고, 동시대 감독들이 좌충우돌 필모그래피를 남기면서도 하나쯤 뽑아내는 수작 같은 작품(이를 테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나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팜므파탈>같은) 없이 안이하게 상업 영화만 만든다는 평가에 시달려야 했다.

혹자는 스필버그 영화의 빈약한 철학적 성찰을 책을 읽기 싫어하는 개인 취향에서 이유를찾기도 하며, 제작자로서 가지고 있는 빼어난 감각 대신 잃을 수 밖에 없는 재능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필버그도 헐리웃에서 잔뼈가 굵었고 때로 반전을 부릴 줄 알았다. 작가 취급을 받지 못하던 스필버그가 어느새 <쉰들러 리스트>를 연출하여 오스카상을 거머쥐게 된 것. 자신이 잘 연출할 수 있는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헐리웃 고전 장르물의 틀로 만들어낸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자신의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물이다. 영리한 영화인이 결국 자신의 재능과 오스카의 요구 사항 사이의 접점을 찾아낸 결과물.


새로운 국면에서, 2000년대

새로운 국면은 21세기로 넘어오며 시작한다. 필생의 야심작을 서른 살에 만들고, 오스카 콤플렉스를 세에 이루며 작가의 꿈을 이루고, 제작자로 헐리웃 굴지의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를 키워낸 (현재 이 영화사는 경영 악화로 합병된 상태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21세기는 어떤 할 일이 남아있는 것일까. 현재를 기준으로 그의 나이 겨우 세, 작가라면 이제 전성기에 이르러 원숙한 경지에 이른 시기다. 이전까지와 다른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스필버그의 21세기 영화는 범상치 않다.



새로운 세기 첫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디어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과 감독으로 마무리한 . 큐브릭이 구상한 냉혹한 시대의 피노키오 이야기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시선을 의식하며 연출한 영화. 산에 녹아 내리고 불에 타 죽는 로봇 카니발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로봇의 순진무구함까지 큐브릭의 냉정한 시선이 영화 가득 남아있는 것은 스필버그가 내내 큐브릭을 의식했다는 증거겠다.

하지만 필름 사이에 남아있는 온정은, 혹은 조금은 동떨어진 듯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해피엔딩은 역시 세상의 온정을 믿고 있는 스필버그의 색깔 그대로다. 영화 당시에 나왔던 혹평대로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아이디어에 허덕이며 자신의 색깔을 놓쳤건 호평처럼 스필버그와 큐브릭이 대화하며 수작을 만들어냈건, 스필버그가 이전의 그와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독특한 스필버그 영화였지만 공동 작품이기 때문에 온전한 스필버그 영화로 볼 수 없다면 <캐치미 이프유캔>으로 변화를 확인해도 무방하리라. 상업적으로 균형 잡힌 이야기 구조와 긍정적이고 순진한 사고방식까지 <캐치미 이프유캔>은 스필버그 작품다운 성격이 완연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지는 않는지? 장르물의 구조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캐치미 이프유캔>은 스필버그의 이전 영화와는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동안 스필버그의 영화라면 <미지와의 조우>에서 <쥬라기 공원>으로 이어지는 판타지적 세계의 작품이었거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도 <칼라 퍼플>에서 <아미스타드>까지 인종주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담고 있는 진지한 작품이었다. 혹은 <사랑은 그대 품안에>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처럼 고전 헐리웃 장르물을 재해석한 영화였다. 어떤 쪽이건 세밀한 캐릭터 묘사와 감정 상태를 파고드는 소소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캐치미 이프유캔>은 주인공의 세밀한 감정 변화와 섬세한 주변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다. 여전히 장르물에 대한 이해가 탄탄하고 스릴과 유머를 조합하는 실력이 뛰어나지만 <캐치미 이프유캔>은 이전과는 달리 스티븐 스필버그 자신의 감정이 많이 녹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영화 속 년대 미국은 실제보다 따뜻하고 여유가 있는 추억의 공간이다. 자신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60년대의 미국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전의 스필버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같은 해에 개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어떤가. 누가 보아도 잘 만든 상업 영화지만 이 영화는 이전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순진한 믿음이나 밝은 세계관이 보이지 않는다. 원작인 필립 K. 딕의 소설보다는 훨씬 밝은 이야기지만 스필버그의 전작에 비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쪽에 훨씬 가까운 어두운 비젼의 영화다. 결국 잃어버린 아이는 찾을 수 없으며 개척한 듯 보였던 인류 미래의 모호성은 원상태로 돌아간다.

쉴 새 없이 개봉하는 스필버그의 다음 영화는 <터미널>. 이 영화는 반대로 지나치게 밝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순진하다. 착한 사람은 어떻게든 복을 받는 순진한 영화를 21세기 헐리웃에서 유일하게 소화할 수 있을 톰 행크스를 데리고 찍은 영화로 스티븐 스필버그는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여준다. 쉽게 보면 <터미널>은 너무 스필버그 영화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세상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인 시선이 단순하게 표출되는 것이 스필버그 영화를 유치하게 보는 비평의 시선이었고 <터미널>은 그런 관점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90년대 이전 스필버그가 실화를 바탕으로 그렸던 영화는 대단히 진지한 분위기였다는 것을 잊고 있다. 유태인과 포로 수용소를 배경으로 만들었던 <태양의 제국>과 <쉰들러 리스트>가 그랬고 흑인의 인권에 시선을 두었던 <칼라 퍼플>과 <아미스타드>가 그랬다. 전작 중에서 유일하게 <터미널>과 비슷한 작품은 덜 예쁜 <사랑과 영혼>이라 할 <사랑은 그대 품안에>정도다.

올해 개봉한 작품에 이르면 스필버그의 행보는 갈지자를 연상하게 한다. 이번엔 19세기 SF소설을 각색한 <우주전쟁>이라니. 그것도 요즘 유행에는 한 참 어긋나는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따라간 영화였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의 합작임에도 흥행성적이 좋지 않고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우주전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구나 올 겨울 스필버그는 70년대 올림픽 선수촌을 공격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사건을 영화화한 <뮌헨>을 개봉하려고 하고 있고 차기작은 애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셈이다.


나이듦 혹은 작가의 노년



장르와 소재를 종단하고 오리지널과 리메이크를 횡단하는 스필버그의 2000년대 영화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선은 감독으로 데뷔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스필버그 영화를 관통하며 남아있는 영화적 요소부터 정리해 보는 것이 접근하기 쉬울 듯 하다. 장르와 소재를 넘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50년대에서 60년대 헐리웃 스튜디오가 융성하던 시기, 장르물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영화적 기술은 스필버그 감독이 50년대와 60년대 시네마 키드로 자라며 얻은 장르의 유산이다. 진지하게 접근한 작품을 만들면서도 이야기가 잘 빠지고 지루하지 않은 스필버그 영화의 장점은 일련의 진지 시리즈 <칼라퍼플><태양의 제국><쉰들러 리스트>에서 장르적 접근을 빼먹지 않으며 나타났다. 출세작 <죠스>는 공포영화의 공식을 해변에 이식한 작품이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30년대풍 모험극을 장르적인 손길로 가다듬은 작품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쫓기는 60년대 느와르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물론이고, 아무리 보아도 전성기 시절 프랭크 카프라의 순진한 아메리칸 드림을 연상하게 하는 <터미널>이 그렇다. 영화의 DVD버젼 서플먼트를 보면 더욱 확실해지지만 <우주전쟁>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소년 시절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조지 팔 버전의 1953년작 <우주전쟁>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는 영화다.

그런데 어떤 것이 2000년 이전의 스필버그와 2000년 이후의 스필버그를 다르게 하는 것일까. 장르와 소재가 다르고 작품의 방향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지만, 스필버그의 21세기 영화는 훨씬 개인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이전의 스필버그가 어떤 순간에도 사업가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스필버그는 반드시 상업적인 성공을 이끌어낸다는 집착에서는 초연한 상태로 보인다. 이미 헐리웃 감독이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을 이루고 30년 경력의 헐리웃 주류 감독과 제작자로 지내며 상업적인 감각은 체득했다고 믿기 때문일까.

지금 영화라면 틀림없이 시시하게 느껴질 원작의 엔딩을 손 하나 대지 않고 <우주전쟁>을 연출하는 고집이나 2000년대 기준으로 너무 순진하게 느껴지는 40년대 프랭크 카프라 영화처럼 <터미널>을 연출하는 뚝심은 스필버그가 가지고 있는 장르물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미국에 대한 추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캐치미 이프유캔>이나 친구의 유지를 이었던 는 어떤가. 그야말로 개인적인 이유에서 출발한 영화가 아닌가.

또, 2000년 이후의 스필버그 영화는 90년대까지 스필버그 영화가 닿지 못했던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환상과 순수의 세계였던 스필버그 영화가 갖지 못했던 세상, 냉혹한 현실과 비정의 세계다. 시작은 영화 사상 가장 스펙타클한 전쟁씬을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질감으로 잡아낸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부터다.

그리고 냉혹한 스타일리스트 스탠리 큐브릭의 유지를 이어 에서 전례없는 차가움을 연출하더니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차가운 느와르의 색감으로 SF 소설가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비관주의자 필립 K. 딕 원작을 영화화하고 <우주전쟁>은 SF인데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 같은 뼈저린 재난과 다시 없을 현실적 공포를 제공한다.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감이 53년판 <우주전쟁>의 강렬한 이유였다) 그리고 이젠 <뮌헨> 테러를 넘어서 애이브러햄 링컨이다.

거칠게 보자면 장인보다는 작가가 더 개인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과정은 몰라도 결과는 작가가 더 개인적인 색깔을 영화에 많이 남겨 놓는 듯 하다. 개인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떨까. 올해 60.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다. 개인적인 영화를 작업하고 세상에 대해 냉정해진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의 풍모를 더 느껴보고 싶은 것은 20년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좋게건 나쁘게건 보고 자라난 한 관객의 바램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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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시드니 폴락 2008-05-28 15:08
어느덧 환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장인에서 작가까지...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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