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는 데, 게으름을 피우며 읽기를 싫어하기에 한마디 나무랐습니다. 그랬더니 그 애가 “하늘을 보니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天) 자는 왜 푸르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천자문 읽기가 싫은 겁니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아이의 총명함은 한자를 만들었다는 중국의 창힐을 기죽게 할 정도입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유한준에게 보낸 편지(答蒼厓, ‘연암집’에서)

 
유한준은 당시 연암과 함께 쌍벽을 이룬 문장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문학관은 달랐다. 유한준이 문장의 모범을 사마천과 반고로 대표되는 고문(古文)에 두었다면, 박지원은 옛글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글을 창작하는 ‘법고창신’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았다. 둘은 한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학토론을 벌였다.

연암은 이 편지에서 시골 서당의 학동의 이야기를 빌려 문학과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가는 말하고 있다. “하늘 천, 따 지…” ‘천자문’ 하면 암송을 떠올린다. 그냥 욀 뿐이다. 서당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내용을 따져가며 외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린 학동은 첫 글자 ‘하늘 천’에서부터 딴죽을 건다. “왜 하늘 천 자는 푸르지 않는가?”. 허를 찌르는 질문이다. 여느 훈장 선생이라면 “요놈”하고 쥐어박았겠지만, 연암은 그 아이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모름지기 글쓰기는 이래야 한다. 표절이 유행이라는데, 남의 것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쓰지 않는게 낫다. 글의 생명은 창신(創新), 즉 창의성에 있기 때문이다.

〈조운찬/경향신문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