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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시] 앵두 - 유종인 |
| 글쓴이 : 유종인
글쓴날 : 12-08-2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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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유종인
앵두라니,
중국집 밖엔 눈보라가 치고 먼 머언 절간 추녀 끝엔
쇠물고기가 배고픈 줄 모르고
제 몸을 때려 천지의 눈발을 헤쳐 나아가려는데,
앵두라니,
이제 막 배달에서 돌아온 중년 사내는
머리를 덧씌운 붉은 앵두 속에서 머리를 빼낸다
유독 귀밑머리만 하얗게 센 사내는 앵두를 빠져나오느라
머리가 잠시 봉두난발로 웃는다
자칫 없는 길고양이라도 한 번 기일게 울 참이다
그래야 동떨어진 앵두는
겨울 골목골목을 내닫는 앵두의 피가 새삼 서러운 줄 알겠다
겨울 들판에 혼자 밥 먹는 버드나무는
짐짓 머리를 한 번 들었다 하면 큰 울음이 사방인 줄 알겠다
앵두야, 계절을 잃으니
여기저기 전단지처럼 밟히는 기별도 다시 주워들게 된다
앵두야, 혼자서는 허공도 면벽(面壁)이니
우리가 변죽을 울려주러 가야 한다
앵두야, 너와 내가 다른 머리를 쓰고 살아갈 때
사랑은 메뉴판에 없는 음식처럼 황망한 것,
아, 더 세차게 중국집 유리문을 때리는 눈보라
전화벨이 울린다 철가방이 벙긋 입을 벌린다
천년을 늙어갈 중년 사내는 앵두를 뒤집어쓴다
앵두는 깜빡 졸음을 털고 사람을 알아간다
아니 철모르는 사랑을 익혀간다
코끝이 빨간 바깥추위가 앵두의 피를 반긴다
앵두야, 배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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