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좋은시] 산꿩이 우는 저녁 - 최금진 |
| 글쓴이 : 최금진
글쓴날 : 12-08-25 09:50
1072번 읽음
좋아 : 0 |
|
| 트랙백 주소 : http://iskyi.com/iskyi4/bbs/tb.php/love/662
|
|
산꿩이 우는 저녁
최금진
싸이나를 먹은 꿩들이 밭둑에 자빠져 있는 걸
소쿠리에 주워담는다
고모부가 나에게 근본도 없는 놈이라고 한 말은
저녁에 먹을 꿩고기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약을 먹은 산꿩들이 아무렇게나 처박혀 누워 있는 저녁
슬픔이란 것은 태초부터 저렇게 맥없이 누워 있어
겨우내 쌓인 눈 위에 싸락눈은 내리고
굶은 꿩들이 숲속 어디에 숨어 이쪽을 내다보는 저녁
콩알 같은 불빛 한 점 찍어먹으며 누구나 견뎌야 하는데
아버지는 어째서 견디지 못했나
약을 먹고 넘어간 동공에 어린 나를 가득 담았을 것이나
결핍이 얼마나 채찍처럼 사나운지 아버지는 몰랐을까
아직 숨이 붙은 꿩은 깡충깡충 갈잎을 물고 달아나고
그 뒤를 따라가 나는 발로 걷어찬다
놈이 살았다면 커서 황홀한 날개의 장끼가 되겠지
애비도 없이 자란 나는 밭둑에서 꿩을 줍는다
숨이 끊어질 때 죽음은 싸이나처럼 몸에 황홀하게 퍼졌을까
인간과 꿩 사이에 언제까지나 이런 장면들이
반복될 거라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알았을까
할머니가 캄캄한 눈으로 마당에 나와
내 소쿠리에 가득 든, 피 토하고 죽은 산꿩을 뺏어들고
연기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듯이
고모부가 변소에서 나오다가 싸락눈을 받아먹는 나를 욕하고
절름거리는 다리를 앉히고 꿩의 깃털을 벗기듯이
굴뚝으론 할아버지 앓는 기침이 하얗게 새어나가듯이
멀리서 꿩들이 꿩꿩,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녁
나는 머리를 오동나무에 대고
왜 이 모든 풍경들이 내 몸으로 흘러들어오는지가 궁금했다
해마다 눈은 내릴 것이고 꿩들은 배가 고플 것이고
나는 죽은 아버지 함자를 까먹지 않기 위해
손톱을 세워 나무에다 새겨넣었다
|
|
|
|
|
꽃이 진다고 아예 다지나 - 정호승
산꿩이 우는 저녁 - 최금진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 이용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