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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섬돌 - 유종인

글쓴이 : 유종인 글쓴날 : 12-08-30 03:36 1734번 읽음 좋아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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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

유종인

집은 돌아가고,
섬돌은 고령(高齡)이다

비가 와서
겨우내 이 어눌(語訥)에서 풀릴까 했는데
섬돌은
그저 밟히고 쓸려서
한 홉도 안 되는 말의 흙먼지들
깨져 나간 한 섬돌 틈서리에 비껴 놓는다

어디로 가라는 이 어눌함인가
오르고 내리는 비의 발걸음이
반듯하던 섬돌 하나
한 편 기울어
봄비는
이승에 와 처음 기우는 말을 배웠는가

기울고 기운 마음이
밝히는 연애 하나,
어디로 스며
사랑의 잎눈이 트이겠다는 속삭임인가

맑히고 맑혀서
죽음조차 맑혀서
기운 섬돌에
이마받이하는 봄비의 종아리들,
누가 저 아찔한 각선미를
섬돌에서 내려 걷게 하겠는가

[사랑이라는 재촉들], 문학과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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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 - 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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