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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랑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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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맹수 같은 감수성을 지닌 사진작가 김홍희
바다가 보이는 언덕, 갈곳 없는 철거민 아파트에서 스코트 맥켄지의 <샌프란시스코>를 듣던 소년이 있었다. 기타 하나만 들고 아무도 몰래 홀로 지구를 걸어다니는 방랑자. 어린 시절 김홍희는 ‘히피’를 꿈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타 대신 카메라를 들고 세계 곳곳을 방랑하기 시작했다.
부산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유학한 뒤, 세계 수십 개국을 방문한 기록을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컴》에 담았다. 그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소설가 정찬주와 함께 암자 기행한 뒤『암자로 가는 길』를 펴냈고, 미술평론가 박영택과 함께 숨어사는 예술가들을 소개한 예술가로 산다는 것』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에 펴낸 『나는 사진이다』에서는 사진에 관한 기술적인 면에서부터 원칙과 깨달음을 두루 담았다.
사진가 김중만이 실감나게 묘사했듯이 김홍희는 “장난꾸러기처럼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는 갈무리도 하지 않은 거친 눈빛을 휘두르는”을 가진 ‘맹수 같은 사내’다. 포착할 대상을 발견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김홍희는 그 어떤 맹수보다도 차갑게 변모한다. “사람의 시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나는 울지 않는다. 차가운 렌즈로 들여다보고 손끝의 온기로 셔터를 냉정하게 끊는다. 얼음보다 차갑게”라는 그의 말에는 차가운 야성이 도도히 흐른다.
『방랑』은 맹수 같은 감수성을 놓치지 않고 살아온 김홍희에게 쉼표와 같은 작업이다. 19편의 산문과 46컷의 사진들에서 오래도록 방랑을 하고 돌아온 중년 사진작가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밝은 태양 아래 나이애가라 폭포나 콜로세움, 파리의 에펠탑과 같은 역동적인 풍경 대신 이른 새벽 바다, 어두운 길 위의 정적과 길 끝에 켜진 한 점 불빛, 낡은 소도시의 쓸쓸한 풍경들을 담았다. 2002년에 첫 출간한 이후, 작가의 캡션을 달아 새로 발간한 이번 개정판은 ‘방랑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음’이라는 김홍희의 육성을 보다 생생하게 전해준다.
“나는 이전의 <방랑> 사진들에 캡션을 달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 그것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해서야 용기가 생겼다.” (- ‘개정판을 내며’ 중에서)
지은이 소개
김홍희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5 도일(渡日), Tokyo Visual Arts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했다. 재학 당시 동경 Olympus Hall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일본 유학생 및 재학생을 통틀어 가장 빠른 개인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시는 1989년 아사히(朝日) 카메라와 일본(日本) 카메라에 소개되었다. 이후 일본 잡지에서 현역 학생이자 프로페셔널 포토그라퍼로 활동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1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1년에는 일본 나라(奈良) 시립 사진 미술관에서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초대전을 가졌다. 또한, 세계 수십 개국을 방랑했는데 그 당시의 기록은 대한 항공 기내지 모닝컴에 소개되어 있다. 그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전국의 암자를 방문해 그곳의 정취를 사진으로 담았다. 이 암자 기행은 소설가 정찬주의 글과 함께 ‘중앙일보’ 에 연재되었다. 1999년에는 우리시대의 얼굴을 촬영한 「세기말 초상」이라는 사진집을 출간, 문예진흥원이 선정한 '한국의 예술선 2000'에 선정되었다. 2005년 현재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 집단 '일우'를 이끌고 있으며, 문예진흥원의 「한국의 예술가 2000」에 28명의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암자로 가는 길」「만행 - 하바드에서 화개사까지」「인생은 지나간다」「벼랑에서 살다」「예술가로 산다는 것」「방외지사」등의 사진을 촬영했다. 작품집으로 「세기말 초상」「나는 사진이다」「방랑」이 있다.
차례
글머리에
방랑
노래
이혼여행
에어컨
라미
쫑
바라나시에서 온 편지
김용사
죽음
삼촌
참새
거짓말
통표
보증인
시간을 병 속에
벚꽃
합창
동경東京
타지마 씨의 세 딸
읽지 않은 성경
마쓰자키 선생
고백
책 표지 글
돌아보면 사랑도 삶의 풍경이다
Love Song To A stranger
만남 없는 헤어짐이 어디 있겠는가.
헤어진 모든 것들은 사랑한 것들이고, 사랑한 모든 것들은 낯선 것들이다.
우리는 낯선 것들과 만나 사랑하고, 낯선 것들과 이별한다.
방랑 역시 낯선 것들과의 조우다.
조우는 고통이고, 고통은 신음한다.
그래서 방랑은 신음이다.
그러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음이다.
오히려 아프기 위한 신음, 그것이 방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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