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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남훈
글쓴날 : 03-04-11 12:58
2192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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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모바일컬럼니스트 겸 프로레슬러 김남훈입니다. 요즘들어 무규칙 격투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위성방송에서 심야시간대에 방송을 해주면서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곧 국내에서도 무규칙 격투시합이 벌어질 예정이고, 저도 출전을 준비 중입니다. 외국 유명 선수들의 특기나 기술을 PDA로 정리해서 운동 중에도 틈틈이 보곤 합니다. 이젠 정말 저에겐 없어선 안되는 제품이 바로 PDA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엔 일본을 갔었습니다. 바로 아키하바라에 갔었죠. 사실 그 동안 일본 출장을 하도 많이 다녀서 마일리지로 동남아왕복권이 나올 정도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느긋하게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 나리타에 도착해 스카이라인을 타고 신쥬쿠역에 도착하면, 그냥 ‘일하러 온 느낌’일 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요. 잠깐씩 짬을 내서 아키하바라를 돌면서 디지털기기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일 보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키하바라는 화재가 자주 일어났던 곳
이번에도 일의 성격이 강했습니다만, ‘아키하바라 탐방’이 메인이었기에 훨씬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일본 최초의 컴퓨터잡지인 월간 아스키의 엔도 편집장과 아키하바라 관련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분들이 동행해줄 예정이어서 그 기대는 매우 컸습니다.
일단 출발 전에 아키하바라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것들이 많더군요. 아키하바라는 원래 하급무사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싸움과 화재는 에도의 꽃이란 말이 있었듯이, 아키하바라 주변은 항상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곳에 신사를 세워서 이 불의 기를 누르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하지요. 1870년대에 아키바하라라는 이름의 신사가 생기고, 1890년대에 아키하바라역이 생기면서 이 지명이 일반화됩니다.
이후 2차대전 패망 이후에 전후의 미군 구호물자들과 전자부품 등이 이곳에서 암시장과 노점상의 형태로 거래되기 시작했는데, 도로확충 등을 위해서 점령군사령부는 상점주들에게 퇴거를 명령하고 대체지로 지금의 아키하바라역 주변에 토지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당시 점령군의 이런 정책적인 결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정돈된 모습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당시 점령군 사령관은 맥아더였으니 세상일이란 게 정말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전자상품의 거리, 엄밀히 말하면 전자부품의 거리가 형성이 되면서 한국전쟁과 민방 라디오 개국과 조립식 라디오의 인기가 일본 전체는 물론 아키하바라에 큰 활력을 제공하게 됩니다. 한국전쟁의 특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1953년에 텔레비전방송이 시작되면서 역도산의 프로레슬링과 함께 흑백텔레비전, 전기냉장고, 전기세탁기가 이곳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아키하바라는 더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키하바라입니다만, 역시나 한국사람에게 아키하바라라고 한다면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빗살무늬 네온사인과 함께 흘러나오는 전자제품 전문점의 로고송 그리고 마치 노점상 슬리퍼퍼럼 쌓여있는 워크맨과 CDP 등 각종 전자제품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직업이 모바일 관련 컬럼니스트인 만큼, PDA와 기타 최신기기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을 갖고 아키하바라에 도착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사실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아키하바라는 더 이상의 예전의 아키하바라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일단, 평일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오가는 행인들도 적었고, 동네 전체에 뭔가 활기가 없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형매장들의 폐점 세일 포스터도 보였고, 근년에 이르러 레스토랑 등으로 업종 변경을 시도하는 매장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듯 아키하바라가 명성을 잃어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일단 대형양판점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예전 스타일의 아키하바라엔 이른바 ‘안테나 숍’이라고 불리는 전문점들이 많았습니다. 단순한 전문점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재빨리 수신하고, 그것을 트렌드로 확대 재생산하여 송신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런 안테나 숍들이 대형양판점의 가격경쟁에 패배하면서 대형양판점의 한 코너로 모두 흡수된 것입니다.
몇몇 통계자료를 보면 어느 소프트웨어의 경우엔 아키하바라 전체의 매상이 대형양판점 한 곳의 매출의 70% 수준 정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PDA 최신 제품들도 아키하바라에선 보기 힘들고 신주쿠 같은 곳의 대형양판점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전문점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그곳엔 콘텐츠와 동인 관련 상점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2나 DVD및 CD를 파는 상점들이 아키하바라역의 대로를 점령했고, 그 사이사이에는 성인용 잡지와 소프트웨어전문점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 대로 뒤편엔 벌크나 조립PC용 부품을 파는 가게들만이 그나마 옛 아키하바라의 정취를 살려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대형상점들과 약간의 안테나숍들이 존재를 합니다. 그 상품의 종류와 숫자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비해 현격히 분위기가 다운됐고, 신주쿠 같은 곳에 있는 대형양판점들보다 활기가 없어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키하바라를 살리려는 민관 합동 노력
이렇게 다소 분위기가 침체된 아키하바라는 어떤 면에선 가장 주목을 받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정부와 민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벤처를 위한 벤처타운도 생겼고, 그 와중엔 ‘도쿄타워2’ 같은 프로젝트도 있었습니다.
‘도쿄타워2’는 지상파의 디지털방송을 위한 높이 600m에 달하는 세계최대급의 전파타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지금의 아키하바라역 앞의 주차장 부근에 500억엔 가까운 비용을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실현됐다면 전자제품과 네온사인이 홍수를 이루면서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가 있는 500m의 첨답이 정말로 묘한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전파타워는 아키하바라가 아닌 다른 지역에 건설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한가지는 대형 양판점이 아키하바라에도 들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도바시 카메라가 아키하바라에 진출할 것이라고 합니다. 동경역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키하바라에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들을 잡기 위한 전략적인 출점이라고 하더군요.
지속적인 경기불안과 함께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새로운 발전 방향을 찾고 있는 아키하바라. 그 탄생 자체가 전쟁과 함께 태어난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참으로 드라마틱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 일본인 지인들도 대부분 ‘전파소년(일본에서는 디지털에 관심 있는 청소년을 이렇게 부릅니다)’으로서 이곳을 출입하던 사람이었는지 아키하바라의 앞으로의 모습에 상당히 신경을 쓰던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입국시에 세관원이 어디를 가냐고 묻길래 ‘아키하바라’라고 짧게 대답했더니, “두 유 해브 매니 머니? 와쿠맨, 테레비, 캠코다~”라고 말하면서 웃더군요. 앞으로 아키하바라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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