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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화도를 아주 쉽게 찾는다. 서울에서 퍽 가까운 그 거리도 거리지만 모범 답안처럼 정해져 있는 코스도 여기에 한 몫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갔다 오지 못한 사람이 알고 있는 건 전국체전 때의 성화를 채화하는 기억 정도밖에는 없다. 강화도가 지정 유산만 250여 개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역사·문화 유적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 또한 많지 않다. |
작지만 볼거리가 많아 주말여행 코스로도 더할 나위 없는 강화도. 이곳에 가면 우리네 역사는 물론 가을 풍경을 만끽하는 특별함이 있다. 9월의 어느 주말에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의 고장, 강화도를 찾았다.
서울에서 올림픽대로를 타면 그 끝 즈음에서 김포·강화의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강화초지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와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를 잇는 다리로, 강화도로 들어서는 길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2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길이 1,200m에 폭이 17.6m에 달해 그 거대한 외관만으로도 장관을 이룬다. 무엇보다 다리 사이의 거리만 120m에 달하고, 가운데가 높이 올라간 아치형이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다리 밑으로 큰 배가 통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유적지를 제쳐두고 이 다리가 강화도의 첫 번째 명소로 꼽히는 이유는, 다리의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갯벌 때문일 것이다. 다리의 오른쪽으로는 멀리 영종도가, 왼쪽으로는 강화도의 상징이 되어버린 마니산 남쪽의 갯벌이 보이는데, 모래톱이 20m 가량으로 좁아 만조 이외에는 항상 갯벌을 감상할 수 있다.
강화초지대교에서 가천의과대학 쪽으로 향하다 보면 저 멀리 마니산이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는 참성단(塹城壇, 사적 제136호)이 있으며, 참성단 동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마니산의 정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니산을 강화8경의 으뜸으로 꼽는 이유는 마니산을 중심으로 집약된 풍부한 문화 유적 때문이다. 봄, 가을 등산 코스로도 유명한 이 산은 그 입구에서 등산로까지 이르는 길에 무려 20여 개의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
마니산 입구에서 단군로까지의 등산로는 포장된 산책로이기 때문에 가족 단위의 등산객이 많이 찾는 길이다. 또한 가을철 단풍이 가장 좋은 구간으로도 알려져 있다. 입구에서 함허동천으로 향하는 등산로도 추천할 만하다. 이 등산로는 고즈넉한 천년 고찰, 정수사와 동막해수욕장을 지난다. 정수사(淨水寺)는 숲으로 에워싸여 명상적인 분위기를 주는 돌계단 위에 위치해 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없을 만큼 뛰어나다. 정동향을 하고 있는 대웅전(보물 제161호) 마루에 앉으면 바다 건너 육지를 달구며 떠오르는 해가 장관을 이룬다고 하니 이른 새벽에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정수사 방향의 능선길을 내려오면 산 좋고 물 좋기로 소문난 함허동천이 나온다. 조선의 승려 기화(己和)가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계곡 입구의 바위에는 기화가 썼다는 ‘함허동천(涵虛洞天)’이라는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대로, 이곳에는 빼어난 산세를 끼고 곳곳에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이 바위들을 넘나들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특히 계곡 한켠에 200m에 달하는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니산의 절경으로 꼽힌다. 계곡 아래에는 한국 최고의 야영장으로 꼽히는 함허동천 야영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함허동천에서 산세를 감상하고 다음 탐방지로 정한 곳은 강화의 본사(本寺)인 전등사(傳燈寺). 전등사를 향하는 길 위에서도 강화의 숨은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마니산의 서쪽 능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서해낙조로 유명한 장화리 낙조조망지를 거치게 되는데, 이곳은 일년 내내 바다로 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자 강화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조망지를 끼고 큰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전등사로 들어서는 입구가 보이는데, 이 사찰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이 있다. 또한 대웅전에는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이 104장이나 보관되어 있어 강화도 내 최고의 유적지라 할 만하다. 특히 전등사에서 들리는 해질녘의 풍경(風磬) 소리와 목탁 소리는 강화8경에 속할 만큼 그 소리가 맑고 청명하다.
장화리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서해 일몰의 장관은 뭐니 뭐니 해도 석모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최고로 친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눈앞에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섬다운 고적함은 덜하지만 석모도의 정취는 어느 곳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빼어나다. 영화 <시월애>의 무대이기도 했던 이 섬은 사실 볼거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자전거 하이킹 코스나 드라이브 코스 등으로 더할 나위 없다.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에서 키 큰 소나무로 둘러싸인 산책로를 10여 분 오르면 수액을 맞고 있는 은행나무 뒤로 보문사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거대한 자연석에 뚫린 널찍한 석굴과 석실 앞에 있는 6백 년이 넘는 향나무, 그리고 낙가산 중턱 암벽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으로 유명하다. 23나한상과 불상을 모신 석실은 일명 ‘석굴암’으로 불리는데 한낮에도 은은한 촛불 빛이 새어나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문사 대웅전 오른쪽 옆에서 시작되는 418개의 계단을 따라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그 끝에서 거대한 암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좌상과 마주친다.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지만 많은 이들이 서해 낙조를 보기 위해, 혹은 불공을 드리기 위해 이곳에 오른다.
보문사에서 조금만 서두른다면 석모도의 서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10월경의 낙조 시간은 저녁 6시 전후. 보문사에서 다시 일주도로를 타면 삼산면 상봉산 기슭으로 오르는 고갯길에 이른다. 여기가 바로 석모도 제일의 낙조명소로 손꼽히는 한가라지 고개로, 바로 앞에서 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장관이 펼쳐진다. 여기서 삼산면 소재지를 돌아 석포리로 돌아 나오면 석모도 일주가 끝나는데, 석모도와 강화 간의 도선은 해가 지면 다니지 않으므로 낙조를 감상하려면 섬 안에서 일박을 해야 한다.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은 섬 서쪽인 데 반해 선착장은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에 석모도에 들어가 낙조를 보고 1박한 뒤, 일요일 아침에 나오면 교통체증의 고통도 줄일 수 있고 한적하게 석모도 일주를 할 수 있어 좋다.
에디터_배경수 사진_이주희
아름다운 단풍 명소 20선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