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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왜 쿠바야?”라고 물어보면, 나는 여전히 할 말이 없다. 애초에 어쩌다 쿠바로 떠날 생각을 했는지, 왜 결국은 쿠바로 떠났는지, 그리고 돌아와 왜 또다시 쿠바를 그리워하는지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건 연애와도 같다.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한테 잘해주잖아” “노래를 잘 불러서” “잘 생겼으니까” 등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서 설명하지만, 정작 왜 그 사람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사귈 때도 헤어져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쿠바 역시 그랬다. 그냥 끌렸고, 그래서 떠났으며,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씨네21>에서의 5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뉴욕으로 날아갈 때도 그랬고, 다시 뉴욕에서 4백8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쿠바로 떠날 때도 그랬다. 목적지를 향한 더 근사한 이유를 붙이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그것이 전부였다.
2005년 10월 말, 출국 날짜를 며칠 앞두고 캐리비안 해에 허리케인 윌마가 들이닥쳤다. 워낙 강도가 센 태풍이어서 멕시코 칸쿤공항이 봉쇄되었다. 나로서는 뉴욕에서 쿠바로 가는 가장 저렴한 루트가 사라져버린 셈이다. 결국 표를 환불하고 다시 멕시코시티로 경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칸쿤에서 아바나(Havana)까지 왕복 비행기가 2백 달러 정도라면, 멕시코시티에서 아바나까지는 6백 달러쯤 된다. 4백 달러라니, 여행도 떠나기 전에 예산의 1/4을 오버하고 나자 갑자기 마음이 추워졌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현지 여행사의 실수로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리다, 다음 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발생하고야 말았다. 쿠바가 나를 거부하는 걸까, 혹 그 땅을 영원히 밟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결국 비행기가 쿠바로 진입했을 때, 상공에서 그 붉디붉은 땅을 보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올라 쿠바! (안녕 쿠바) 소이 우나! (나는 은하). “스- 스쓰- 스스스쓰-” 마치 뱀을 부를 때나 나올 법한 이상한 소리로 쿠바 사람들은 서로를 불렀다. 처음엔 그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게다가 바다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말레꼰(방파제)을 걷거나, 좁은 골목을 지나는 건 고역이었다. 쿠바에서 동양인들이란 1950년대 제주도에 떨어진 흑인의 처지와 비슷할 것이다. 그나마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아바나는 나았다. 그 외의 지방에서는 모두 동물원 원숭이도 그런 원숭이가 없을 정도다. 아이들은 나를 외계인 보듯이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뒤에서는 어김없이 “미라 미라! 치나 치나! (봐 봐, 중국 여자 중국 여자!) 스- 스쓰- 스스스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다가, 말을 걸고, 악수를 하고, 이름을 묻는 것이 그들의 다정한 습관임을 얼마 후에 알긴 했지만, 여전히 땅꾼 같은 그들의 호령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바쁜 식당에 앉아 어설픈 스페인어로 “여기요!”를 목청껏 외쳐대는데 웨이터는 좀체로 대꾸가 없었다. 결국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스--쓰스스” 조그마한 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때 웨이터는 거짓말처럼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이후 나는 밤이면 밤마다 이 소리를 연습했다.
최대한 쿠바 사람들과 비슷하도록. 그것이 이 여행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면. 혁명 영웅 피델 카스트로가 반세기 가까이 장기집권하고 있지만, 쿠바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는 체 게바라, ‘엘 체(el Che)’임이 분명했다. 쿠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체 게바라의 무게는, 그의 평전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지적 허영을 채우는 우리나라에서의 위상과는 무척이나 다른 것이었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벌써 50년 가까이 흘렀지만, 모국도 아닌 곳에서 치열하게 혁명 운동을 전개한 이 아르헨티나 출신 사나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무척이나 견고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가 지금도 살아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현실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마흔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볼리비아 한 산골에서 살해당한 비극적인 영웅이어서겠지만. 아바나에서 2백76km 떨어진 산타클라라(Santa Clara)는 체 게바라의 시신이 묻힌 체 게바라의 도시다. 굳이 이 도시를 여정에 넣은 것도 바로 체 게바라 박물관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런 바보 같은 실수가 있나. 그곳을 찾은 월요일은 박물관이 문을 닫는 날이었다. (계속되는 불운!) 결국 체 게바라가 피델에게 썼다는 그 유명한 편지 앞에서 손가락을 빨다가, 산타바바라의 혁명 광장에 앉아 하염없이 체 게바라의 동상을 우러러보다가, 아이팟에 담아온 “꼬만단떼 (사령관)~ 체 게바라”(카를로스 푸에블라의 체 게바라를 향한 연모의 곡 ‘영원하라 hasta siempre’는 이곳에서 애국가보다도 유명한 노래였다)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듣다가, 한국의 친구들에게 엽서를 썼다. 그렇게 1시간가량을 보냈지만 예정된 일을 못하고 나니 버스 시간은 좀 애매하게 남았다. 그간 이런저런 여행 중에 생긴 결론이라면 시간이 애매할 땐 영화관을 찾는 것이 가장 보람차다는 것이었다. 결국 산타클라라 시내에 있는 극장을 뒤지기 시작했고 ‘쿠바나칸’(Cubanacan)이라는 작은 시네마테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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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황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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