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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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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이태리 쮜리히, 루체른, 인터라켄 [1999. 8. 10 (화)] - 피카소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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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가딘
글쓴날 : 00-10-14 05:34
1334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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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여행 떠나온지 20여일, 한번도 비를 만나지 않은 행운이라면 행운이, 결정적인 순간에 망가진다. 내일부터 인터라켄 융프라우요흐를 구경해야되는데, 비가 오면 그야말로 말짱 꽝이다.
아침일찍 호텔에서 과일과 약간의 베이컨, 그리고 생선회로 배를 채우고, 희정이네 집으로 갔다. 기숙사인데 원룸 오피스텔(?)처럼 생겼고 아주 쓸모있고 편안하게 만든 공간이다. 다시마를 듬뿍 넣고 끓인 북어국, 돼지고기 주물럭에 뜨거운 밥을 먹으니 새삼 고향에 온 듯하다. 전망좋은 희정이네 방. 쮜리히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여 구경 따로 할 것 없겠다. 한참을 수다 떨고 논다. 전공을 바꿔 다시 유학하고 싶다는 희정이, 그가 매달리는 인생의 목표, 종착점은 어디인지 모르지만, 열심히 생각하고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좋지 않은 몸, 극도의 외로움, 그 속에서 자신과 싸우는 일상. 그의 일상이 행복하게 열리면 참 좋겠다.
뭔가를 바꾸고 싶다. 내 인생의 항로를 스물 아홈, 아직은 늦지 않은 나이에 바꾸고 싶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화두라면 화두인데, 남편은 희정이를 보며, 희정이가 하려는 공부를 내가 해보란다 국제 기관교육? 이름도 잘 모르겠는 그길, 남편은 늘 나한테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것도 사랑의 힘인지, 같이 하는 사람에게 많은 문을 열어주는 것. 어떤 길을 가든 기꺼이 그 문을 통해 힘차게 나가도록, 그래서 자유롭게 비상하도록 돕는 것. 내 남편에게서 그 힘을 발견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기차에 오르니, 아주 빨리 루체른에 닿았다. 늘 서너시간씩 기차여행을 하는데 익숙해지니, 한 시간 못되는 거리는 그저 잠깐같다.
한낮의 루체른은 쮜리히보다 훨씬 평화롭고 따뜻하다. 역앞에 바로 펼쳐진 장관, 그 옆으로 14세기에 처음이었다는 목조 다리 카젤이 아주 운치있었다. 커다란 백조떼는, 아무리 사람이 가까이 가도 묵직하게 물위에 떠서 멀뚱댈뿐 피하는 법이 없고, 사람들의 발길도 조금은 나른하다.
이리저리 산책을 하다가 피카소박물관에 들어갔다. 피카소가 말년을 보낸 이곳에는 그의 집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3층까지 있는 벽면에, 그의 행복한 노후생활을 그대로담아놓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현생을 참 유복하게 마무리한 예술가란 생각이 든다. 밝은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고, 그의 삶은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낙서같은 그림들,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그것들은 외치고 있었다. 난 행복해∼!
밖으로 나와 빈사의 사자상, 그안에서 기분내서 사진 한장 찍고 돌아나왔다. 이상하게 몸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어진다. 열도 쭉 있는 듯하고, 간밤에 잠을 못자고 괜히 뒤척여지더니, 몸에 무리가 되었나보다.
인테라켄으로 가는 브뤼니크 라인에 몸을 실고, 그 유명한 경치들은 거이 보지 못한채 잠들었다. 자꾸만 몸이 땅밑으로 꺼지는 것같았다.
날은 흐리고 몸도 좋지 않고, 나쁜 예감이 드는데, 덜컹대는 기차안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변기에 안경을 빠트렸다. 가슴팍에 끼워두었는데, 좌변기가 너무 더러워 닦을 때 기차가 심하게 흔들린게 원인이었나보다. 늘 조심성없이 행동하는 내가 못마땅하기도 하고, 생전 처음으로 비싸고 귀한 안경을 맞추었는데, 나에게는 인연이 아니었나 싶어 아깝기도하다.
남편은 화를 내지 않고, 잊어버리라 하지만, 연이어 끊임없이 무언가를 빠뜨리고 놓치고 잊고 하는 내가 이해되지는 않는 눈치다. 몸도 안좋고, 기분도 좋지 않은데다 계속 졸음은 쏟아진다.
잠결에 인터라켄에 내리니 여섯 시, 산골의 밤은 참 빨리 찾아온다.
길을 물어 호텔에 닿아 짐을 풀고,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는 한국 중국식당을 찾았지만 오늘 따라 눈에 띄지 않는다. 힘겹게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결국은 포기했다. 차 한잔 뜨겁게 마시고 들어와 그냥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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