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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런던 구경 [1999. 7. 22 (목)] - 버킹검 궁전, 내셔널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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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가딘
글쓴날 : 00-10-13 20:02
1299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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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깊은 잠을 잘 못잤다. 시차탓인지 좀처럼 잠들수가 없다. 24+8=32. 하루를 그렇게 길게 산 셈인데도 잠이 따라와주질 않아 밤새 힘들었다.
너무 일찍 일어난 아침, TV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영어를 들으며 7시를 기다린다.
빵 세 개와 오렌지쥬스, 그리고 잘 우려낸 홍차를 따끈하게 먹고 출발.
어제 보았던 하이드파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 버킹검 궁전으로 향했다. 11시 30분에 볼 수 있다는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
중간에 아주 으리으리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윌리엄공 기념탑을 보았다. 금박으로 치장한 화려한 첨탑과 탑신부의 멋진 벽화 그림, 그리고 그 아래 당당한 윌리엄공. 그에 대해 잘 알수 없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과거는 찬란했다. 밤에는 금박에 반사되도록 네 귀퉁이에 조명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길을 에돌아 버킹검 궁을 찾았는데, 날이 흐려서 교대식은 없다는 광고판만 널려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날이 맑아지면 할까 하는 기대로 주저앉아 있다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했다. (아니, 사실은 투마로우 어쩌구 하는 간판조차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기다리자는 나한테 남편은 상당히 화가 났다. )
빅밴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주변의 멋진 풍광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다잡고 놔주질 않는다. 오전 내내 보아온 이곳 경치는 정말 압도적이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양식이 현대와 공존하며, 때로는 현대의 모든 입김들을 중세가, 그리고 근대가 압도한다. 빅밴의 시계소리까지도 그렇게 묵직하게 울린다.
처음으로 번화가.
사람들이 쏟아지는 모습과 교통이 막히는 숨가쁜 상황을 보았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심지어 양복입은 사람들도 바쁘게 걷지 않는다. 아니 곳곳에 그저 늘어서 앉아 있다. 우리식으로 보자면 꼭 홈리스다. 영국의 현재는 저렇게도 무기력한 것일까. 그들은 정말 과거만 파먹고 사는 것일까.
템즈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강을 통해 본 런던의 멋진 풍경들, 명소를 안내하는 할아버지의 경쾌한 입놀림. (하지만 하나도 들을 수 없어서 남편과 나는 사오정이 되고야 말았다.)남들은 다 까르르까르르 웃어제끼는데, 우리만 심각해 있다. 나중에 보니 그 할아버지는 모자 들고 다니며 사례를 요구한다. 관광객들로 돈벌어 먹고 사는 나라답다.
수없이 강변을 채우고 있는 Whalf는 정말 낡아있고, 또 그만큼 다양하다. 바슷하지만 절대로 같지 않다.
지붕 끝이라도, 창문이라도, 혹은 벽쌓기, 창틀모양이라도 곡선이나 사선을 넣어 개성있게 짓는다. 왼쪽이 수직인 직각 삼각형 건물도, 왼쪽 한귀퉁이가 떨어지면 템즈강에 풍덩 할 것처럼 아슬아슬한 자세의 건물이 아주 자연스럼다. 그래서 건물들은 패셔너블하다. (<- 물론 아주 낡은 느낌이지만)
런던 탑, 런던 브리지, 해양박물관등 이름난 건축들과 우리의 내일 목적지인 테이트갤러리를 거쳐 그리니치까지 한바퀴 돌았다. 나중에 좀 지루해지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하선한 뒤 길을 걸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 사먹고 내셔널갤러리에 닿았다.
먼저 헌금함에 5000원을 넣고(이주헌의 충고대로) 서쪽익관부터 관람했다.
1510년까지의 이름난 그림들이 그야말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만약 영국이 망하더라도 이 그림들만 팔면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처럼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다. 아니 모든 작품이 다 유명한 것들이었다. CD롬으로 된 안내 카세트를 귀에 꽂고 다니는 관람객들이 부러웠다. 우리가 그림 옆에 코박고 어렵게 읽어내고 있는 동안 그들은 설명을 들으며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다시 한번 영어맹의 비애를 맛보았다.
그림속에 충만한 상상들. 중세를 거쳐간 서구인들의 풍부한 생각들은 끊임없이 자극한다. 신과 통하던 사람들의 그림은 성경과 닿아 아주 규범적이다. 자연과 인간은 신에 귀속되어 모두들 정례화되었다. 그 와중에 천재성을 발휘한 작품들, 눈길을 당긴다.
특히 다빈치의 미완성 그림들에서는 선을 나누고 그 나뉜 선을 채우는데 바빴던 화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선과 면 그리고 입체에 대한 차원적 사고를 읽을 수 있었으며, 루벤츠가 바라본 중세여성들, 학대받는 보습은 정말 안쓰럽게 했다. 노리개에 불과한, 사과(복숭아?) 한 알, 꿩 한 마리면 몸을 줄 수 있는 가벼운 인생이, 그리고 전쟁에서 사정없이 남성들에게 도륙당하고 난도질 당하는 거리의 여자들이 숨가쁜 붓 끝에 걸려 있었다. 그는 페니미즘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비슷한 시대 작가 중 누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관심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풍성하지는 않지만 봉긋한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옷을 입고 손에는 쌀함박을 든채 한쪽에 앉아 있는 여자, 발에는 군화같은 샌들을 신고 푸념하듯 앉아있다. 전쟁하듯 일하고 일하면서도 즉시 부름에 임해야 하는 가슴 내놓은 여자, 당시 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살았나.
시선을 돌려 램브란트 자화상전을 찾았다. 특별전이었다. 유럽 곳곳에 흩어져있던 자화상을 모두 모아다가 한 곳에 정리해 놓은 것이다. 7파운드라는 엄청난 돈을 내고 들어가자 램브란트가 나를 내려다본다. 손바닥 반밖에 안되는 작은 에칭들과 10호에서 30호쯤 되는 유화들, 그리고 때로 소묘들, 램브란트의 자화상이 그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다. 청년기에 터득한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립. 그는 어둠이, 어둠만이 빛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나 보다.
현상에서는 빛이 어둠을 만든다. 빛이 비추면, 그 빛의 은총에 힘입어 대상은 변모하게 마련이다. 하이라이트는 어둠을 손쉽게 부정하고 도도하게 빛난다. 빛은 어둠을 희생시키며, 색을 만들고 세상을 치장한다. 그러나 램브란트의 그림은 다르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래서 절망하면 할수록 빛이 생기를 찾는다. 극도의, 최고조의 어둠은 생명을 품듯이 빛을 탄생시킨다. 어둠이 이루는 질 높은 생명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드디어 그 속에서 빛이 태어나 윤곽을 드러낸다. 그의 청년기 자화상이 빛나는 이유도 그가 무척 절망하고 어둠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좌절 속에서 희망을 찾은 것이다. 그의 암스테르담 시절 그림이 긴장을 잃고 있는 것은 그가 어둠을 잃어버린 탓이라고 가볍게 짐작해본다.
그에게 주어진 유명세, 돈, 가정의 평안함은 그에게 평화로움을 남기고, 드디어 어둠을 빼앗아갔다. 그래서 그림은 장식적 수사적으로 변모한다. 머리엔 배래모를 가슴엔 목걸이와 값나가는 옷들을 입힌다. 하지만 그게 행복이었을까? 그가 바라본 자신은 결국 알콜에 취해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노년. 그는 이도 없고 머리카락도 없이 그저 바보처럼 웃고만다.
화가의 엄정하고 과학적인 모습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어둠을 찾아들고 빛에게 묻는다. 나 어때? 그러나 그의 빛은 때로 힘이 없다. 굳이 긍정하자면 빛조차 그에게 말한다. 이제 세상을 관조하고 좀 쉬라고. 그러나 그는 수긍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래서 빛과 화합하지 않지만 결국 조화된다. 세상에 대한 농담같은 그림도. (나무 뒤에서 농담하듯 웃는 자화상, 나무밑에 모자, 외눈박이 램브란트, 그런데 모자는 정말 고대석상같다. 속임수)
작은 에칭과 커다란 유화 그리고 장난같은 소묘 몇 점이 조화된 전시회, 나는 정말 긴장했다. 엽서책 한권 4파운드 주고 샀다. 아쉽고 또 아쉽다.
밖에 나와서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켰다.
동쪽 북쪽 전시장에 늘어선 1500-1800년대 그림을 보기에 내 가슴은 너무 꽉차 있었다. 오 램브란트.
시간상 나머지 전시관들을 대충 훑어보다가 한 곳에 정지. 그림으로만 보았던 고흐가 정말 있었다. 진짜 노란 해바라기. 그 옆으로 고야, 세잔느,고갱, 마네, 모네들이 쉴 새 없이 서 있었다. 심지어 피카소 초년작까지. 이렇게 나는 현대로의 여행을 마친다. 내일 태이트 갤러리까지 보면 미술여행은 런던에서 정리될 것이다.
유명 화가의 대표작들을 너무 쉽게 넘겨서 아쉬웠지만 눈도장 찍은 데 만족!
내셔널갤러리를 빠져나와 황급히 초상화미술관에 들어섰다. 1000원 기부하고.
얼굴에 사람들의 표정에 묻혀 있었다. 앤디 워홀의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에 눈도장찍고, 스티븐 호킹 힘없는 표정에 박수를 보내며, 날개 부서진 채 청정에서 대롱거리는 현대판 니케와 함께 절망한다. 특별히 전시된 대중화된 스타들의 얼굴들은 앨범 자켓에서 튀어나와 음악이라도 연주할 듯 맹렬하다. 3층 의자위에서 위태롭게 앉아있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이 더욱 가슴 아프고, 두 남매가 철저하도록 긴장한, 분노도 절망도 아닌 위기 의식이 안쓰럽다. 그들은 왜 그런 표정이었을까.
밖에 나오니 사람들 천국이다. 피카딜리 광장에서 엄청난 사람들을 만난다. 초상화 그리는 사람들의 기계적인 손놀림. 마네킹처럼 분장하고 서서 갖가지 표정과 제스처로 사람을 긴장시키는 연기자, 그리고 라틴풍 팬플룻 연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절로 흥겨워졌다. 이맛에 여행하나보다.
지하철 환승에 성공하여, 저녁을 먹고(정말 매운 피자, 빵은 냄새도 싫다.) 숙소에 돌아와 정말 죽은 것처럼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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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구경 [1999. 7. 23. (금)] - 자연사 박물관, Tate Gallery, 웨스트민스터사원
런던 [1999. 7. 21.(수)] - 가자 런던으로...
